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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제 Jul 04. 2019

너의 출근길  

출근길에 쓴 생각, 출근길에 한 글

너는 오늘도 신발을 꿰어신고 현관문을 연다. 오늘은 퇴근하는 길에 쓰레기봉투를 사와야지, 냉장고에 있는 시든 과일과 채소를 버려야지, 미세먼지가 물러간다고 하니 창문을 열고 환기도 좀 시켜야겠다, 너는 생각한다. 계단을 내려오며 월세를 보내야 하는 날이 언제인가 헤아려본다. 벌써 날짜가 이렇게 흘렀나 깜짝 놀라다가 이런 식이면 올해도 금방 지나가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득해진다. 너는 휴대폰을 열고 메모장에 ‘월세 입금하기’라고 써넣는다. 전기세도 인터넷비도 적금도 모두 자동이체로 설정해놓았으면서 유독 월세만은 매달 직접 입금하는 너. 월세를 집주인에게 보내고나면 또다시 한달이 유예되었구나 생각한다. 무엇에 대한 유예인지 너는 가끔 헷갈린다. 이 도시에서 한 달을 더 살 수 있다는 것인지 혹은 한 달을 더 견뎌야한다는 것인지. 얼굴에 와닿는 아침공기가 차갑다. 간밤에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쌓일 정도는 아니었는지 근처에 주차된 차 보닛 위에만 얇게 얹혀져있다. 지하철 역까지 가려면 10분 넘게 걸어야 한다. 집에서부터 회사까지는 딱 한 시간이 걸리는데, 앞뒤로 걷는 시간을 빼고도 중간에 환승을 해야해서 무엇인가를 진득하게 하기가 힘들다. 처음에 너는 책을 가지고 다니기도 했고, 책이 무거워 전자책리더기를 사기도 했고, 그것도 무거워 휴대폰만 쳐다보다가, 이제는 휴대폰도 보지 않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너의 생활은 고달프고 그만큼 고민할 것이 많아 생각만 하기에도 1시간이 부족한 것이다. 지하철 역에 도착해 재게 걷는 너. 하나를 놓치면 또 몇 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몇분이 회사에 도착하는 동안 어떤 영향을 줄지 너는 안다. 분명 마음이 가빠질 것이고, 다리는 더 빨리 움직여야 하고, 아침에 10분이라도 더 일찍 일어날 걸, 어제 밤에 멍하니 앉아 있지 말고 그냥 잘걸,에서 끝나면 다행이고 돈이 더 있다면 역에서 가까운 집을 구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가, 까지 생각이 뻗치면 괴로운 기분에 하루를 저당잡혀야 한다. 다행히 들어오는 지하철을 바로 탔다. 이제 한강을 건널 것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합정역에서 당산역으로 가면서 바라보는 한강’이라는 문장을 너는 자주 생각한다. 너는 태생부터 서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지하철은 고등학교 때 처음 타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넓고 깊은 강을 한강말고는 건너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저 문장은 네게 이제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서울 사람들이 저 문장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네가 느끼는 것은 같을까, 다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가끔 고향을 떠나지 않은채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이 서울에서 가장 좋은 게 뭐야,라고 물을 때 너는 고민했다. 꺼지지 않는 밤의 불빛일까,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풍요의 거리일까, 과거의 나를 잊은 채 살 수 있는 익명성일까. 결국 네가 고른 대답은 저 문장이었다. 출근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눈을 감고 있는 사람들이 한강을 지날 때만큼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네가 그렇게 비치겠구나 싶어서였다. 2호선에서 내리면서 너는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출근도 하기 전에 퇴근 생각이라니, 하루 종일 기대하는게 퇴근 뿐인 삶이 너는 우습고도 슬프다. 그래도 퇴근 시간에 바라볼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가면서 바라보는 한강’을 생각한다. 그러면 그래도 오늘을 향해 걸어갈 힘이 난다,고. 너는 환승을 하고 9호선에 올라탄다. 오늘도 어김없이 사람들이 꽉 들어찬 열차. 그 좁다란 틈에 끼여서서 너는 어제 저녁에 봤던 집들을, 아니 방들을 떠올린다. 방이 집이고 집이 방인 원룸 생활에 지친 너는 현관문을 연 후 또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갈 수 있는 삶을 바란다. ‘지하철역 근처’라는 항목을 누르면 ‘방 크기’ 항목은 필연적으로 작아진다. ‘방 크기’를 누르면 ‘보증금과 월세’ 항목이 올라간다. 어제 저녁에 본 방은 공인중개사가 ‘고객님이 제시하신 조건에 맞춰 특별히 고른’ 방이었다. 너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혼자 쓴 웃음을 지었는데, 콧구멍만한 방을 가로질러 굳이 문을 만들고 그걸 ‘분리형 원룸’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다면 결국 작은 콧구멍 두 개가 되는 것이 아닌가, 묻고 싶었지만 공인중개사의 표정이 너무 의기양양해서 차마 말은 할 수 없었다. 9호선에서 내려서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어간다. 다음달 월세는 어디로 입금하게 되는걸까. 언제까지 출근을 해야할까. 아니 요즘은 언제까지 출근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한 달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너의 삶이, 두려우면서도 그래도 살아야지 어떻게 하겠어 싶어, 너는 웃음이 난다. 에스컬레이터의 끝에 오늘의 빛이 보인다. 오전 8시 40분의 빛을 받으며, 너는 에스컬레이터를 걸어올라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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