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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제 Jul 04. 2019

이렇게 더울 땐 냉국수를 말아먹어요

일간 도시락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지 한달 반 정도가 되었다. 한 일주일 정도는 계속 잠이 왔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고 또 늦게 자고 넷플릭스 보고 TV 보고 또 자고. 한강 가까이 사는 덕에 한 번씩 따릉이를 타고 강변을 돌기도 했지만, 다시 집에 돌아오면 이불을 펴고 잠을 잤다. 왜인지 모르게 계속 졸린 날들이었다. 심지어를 하루에 한 끼도 먹지 않은 날도 있었다. 잠은 잘수록 는다더니, 식욕이 수면욕으로 대체되는 형국이었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 점심을 해먹기 시작했다. 아침엔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었고 저녁엔 약속이 있거나 자는 시간을 앞두고 뭔가를 해먹기가 부담스러웠다. 점심은 기름지거나 양이 많은 음식을 먹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또 요리를 하기에도 설거지를 하기에도 앞뒤로 시간이 넉넉하니 괜찮겠다 싶었다. 때마침 집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어 점심시간마다 우리집으로 와서 밥을 먹겠다 했다. 


첫번째 메뉴는 무엇으로 만드는 게 좋을까. 조건은 쉬울 것(오랜만에 음식을 하는 것이니까), 요리를 하는 동안 덥지 않을 것(바야흐로 여름이 시작되었으니까), 설거지 거리가 많이 나오지 않을 것(다행히 설거지는 좋아하지만 기름기 가득한 설거지는 좀 귀찮으니까). 라면이 편하고 좋은데 요리라고 하긴 좀 민망하고, 카레도 만들기는 쉽지만 설거지 거리가 좀 나올 것이다. 볶음밥도 후루룩 볶으면 되긴 하는데 프라이팬과 그릇에 기름기가 뜨겠지. 역시 첫번째 메뉴는 냉국수가 좋겠다. 


먼저 국수장국을 만들자. 국물용 멸치로 낸 육수에 진간장을 섞었다. 설탕과 소금을 입맛에 맞춰 녹이고 대파를 몸통 모양대로 양껏 썰어서 넣었다. 장국이 스며들어 짭쪼롬한 맛을 낼 것이다. 

다음은 고명 만들기. 달걀지단과 오이, 파를 얹을 것이다.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한 후 얇게 구워 국수만큼 얇게 잘라냈다. 오이도 얇게 썰어서 소금을 약간 뿌려뒀다. 소금을 치지 않은 아삭아삭한 오이도 좋지만, 오늘은 장국에 간을 삼삼하게 할 예정이라. 파는 장국에 넣은 것과는 다르게 길게 잘라낸 후 매운 기가 빠지도록 찬물에 담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소면 삶기. 2명이지만 국수란 건 조금 배부르게 먹는 맛이니까 2.5인분 정도로 잡아서 팔팔 끓는 물에 넣는다. 한소끔 끓어오르면 찬물을 부어 숨을 죽이고, 또 한소끔 끓어오르면 또 찬물을 붓는다. 한 번 더 끓인 후 체에 붓고 찬물로 헹군다. 이 때 손가락 힘을 써 야무지게 씻어내야 텁텁한 맛이 나질 않는다. 그리고 두 명 분으로 나눠 소면을 사려놓는다. 


만든 것들을 상 위에 차려낸다. 국수 장국을 큰 그릇에 붓고 찬물을 넣어 간을 맞춘다. 얼음을 두 세개 쯤 띄워서 시원하게 만들어놓는 것이 좋겠지. 하얗고 노란 달걀지단은 색깔있는 그릇에 담는다. 소금기가 약간 든 오이의 연둣빛과 매운 기가 살짝 가신 파의 진초록은 하얀 그릇이면 더 어여쁘겠다. 국수 사리는 투명한 유리 그릇에 담고 얼음을 하나 얹었다. 벌써부터 유리에 물이 맺힌다. 


친구가 문을 두드린다. 상을 두고 마주 앉아 시원해진 장국을 소면에 붓는다. 달걀지단과 오이와 파를 얹고 흐트려 섞는다. 소면의 틈 사이로 장국이 배어든다. 후루룩 후루룩. 젓가락에 소면 가닥을 말아 먹는다. 입 안 가득 여름이 느껴진다. 한없이 덥고 한없이 시원한 여름이. 당분간은 에어컨을 켜지 않고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냉국수를 시원하게 말아먹는 한낮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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