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 높은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글쓰기를 미루다 (약간의 충동으로) 시작하게 된 저스틴입니다.
저는 상담사로 커리어를 시작해,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거치면서 CX(고객 경험) 운영과, 기획을 하고 있어요. 올해로 10년 차가 되었네요. 회고 글의 경우, 편의상 구어체를 사용할게요.
1. 갑자기 욕심이 생겼어요
상담사 출신이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주겠어?
시작하기 전에 반성부터 해야겠어요. 부끄럽지만 솔직히 말하면 '동기부여 없음', '(정말) 귀찮음' 두 이유로 글쓰기를 미뤄왔어요. 2013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로 LG전자에 입사, 또는 블로그로 시작해 테크 유튜버로 성공한 형님 등 많은 사례를 지켜봤는데요. 당시엔 그냥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상담사 출신이 글을 쓴다고 누가 알아주겠어?'라고만 생각했었거든요.
눈과 귀를 닫고 약 10년간 CX 운영과 기획 업무에만 매달린 결과는, 글쓰기를 좋아했던 지인들이 모두 경제적, 커리어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조화된 화법과 핵심만 말하는 기술에 통달해 있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었어요. 이제야 '너무 어리석게 살았구나' 생각했죠. 당시 제 감정을 더 솔직하게 요약하면,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 네, 너무 부러웠어요. 마치 방금 폭발한 화산재처럼 거침없이 동기부여가 뿜어져 올라왔달까요. 글을 쓴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긍정적인 성장 잠재력을 얻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연차가 쌓이며 성장하다 보니, 서비스 운영부터 기획까지 글로 전해드릴 수도 있게 된 것도 다행이었죠.
이 감정과 글쓰기가 앞으로도 지속되도록 노력할게요. 독자 여러분께 전해드릴 첫 번째 이야기는, '상담사와 처우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예요.
2. 상담사와 처우에 대한 이야기
2-1. '상담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상담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제 지인들에게 물어봤더니, [기계 같다, 스크립트 읽는 사람, 효율성의 끝판왕, 불쌍하다] 등 다양한 피드백이 있었는데요. 사실 그 이면에는 놀랍게도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피드백 안에 모두 녹아들어 있었어요. 저의 장점은 고객사, 고객센터에서 운영과 기획을 모두 해봤다는 점에서,
고객사, 고객센터, 고객 간의 다리 역할을 기대하고 있어요.
고객사 = 상담 업무를 '고객센터로 위탁한' 회사
고객센터 = 상담 업무를 '고객사에서 위탁받은' 회사
예를 하나만 들어볼까요? 상담사 처우 문제를 최근에 다룬 JTBC 기사를 가져왔어요. 핵심 내용은 과다한 업무 대비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로 처우개선을 고객사인 은행에 요구하는 내용인데요, 안타깝게도 고객센터 현업에 계신 분들이라면 대부분의 기업이 공통적으로 해당된다는 걸 잘 알고 계실 거예요.
2-2. '상담사'의 업무량은 정말 과다한가
이 수치를 고객센터 전체로 일반화할 순 없지만, 뉴스 기사에서 언급된 하루 100 콜은 정말 많은 양일까요? 하루 9시간 근무 중에 1시간은 점심(법적으로는 휴게) 시간이니, 1 콜당 4.8분의 통화 시간을 지키면서 쉬지 않고 받으면 업무시간 내에 마무리할 수 있어요.
(8 hours * 60 minutes)/100 calls = 4.8 min/call
(8 hours * 60 minutes)/110 calls = 4.36 min/call
(8 hours * 60 minutes)/120 calls = 4 min/call
인터뷰에서 '적어도 100 콜 이상'이라면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을 수 있고 문의 유형이나 고객 성향, 화장실 방문 여부에 따라서 1 콜당 목표 통화시간을 줄여야 하는 변수도 있겠네요. '실제 업무량이 과다한가'에 대한 판단은 주관적이니 독자 여러분에게 맡길게요.
2-3. '상담사'를 둘러싼 고객사와 고객센터의 고충
사실 상담사 처우는 업계 전반적으로 오랫동안 언급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처음 입사했던 2016년부터 지금까지 큰 틀에서 채용, 임금 구조, 운영 체계는 비슷하다고 느끼고 있으니 말이죠. '고객사와 도급사 관계라는 경제성', 이로 파생된 '생산성'이라는 구조적 영역 때문에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도 물음표죠. 이 문제를 접근하려면, 먼저 고객사에 이걸 꼭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표준화된 상담은
고객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근거로 아래 연구 결과를 볼까요? 상담사에게 자율성(=셀프 리더십)을 부여했을 때 상담 품질과 고객 만족, 신규 매출 발생에 모두 긍정적인 결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수치상 보여주고 있어요.
출처: [고객센터에서 상담사의 셀프리더십이 상담품질, 고객만족, 신규 매출에 미치는 영향] / 최수정, 임혜경, 박영숙 / 한국산업경제학회 / 2009. 08 / KCI 등재 논문
이 5개 가설들은 모두 유의미한 수치여서 논문에서 '채택' 결론을 냈고,
가설 H1a) 고객센터 상담사의 셀프리더십이 높을수록 상담품질은 증가한다.
가설 H1b) 고객센터 상담사의 셀프리더십이 높을수록 고객만족은 증가한다.
가설 H2a) 고객센터 상담사의 상담품질이 우수할수록 고객만족은 증가한다.
가설 H3b) 고객센터 상담사의 상담품질이 우수할수록 신규 상품 유치 실적은 증가한다.
가설 H3) 고객만족이 높을수록 신규 상품 유치 실적은 증가한다.
출처: [콜센터 고객 상담원의 직무만족 및 조직몰입이 이직의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 염명우 / 한국산업경제학회 / 2010.02 / KCI 등재 논문
이 논문에서는 [업무 환경이 열악하고, 개인의 성장 기회가 없으며, 상급자와의 관계가 좋지 못하고, 동료와 친화감이 없으며, 정서적 애착심이 없고, 강한 소속감이 없는 경우]에는 잠재적 그리고 빈번한 이직 의도를 가진다고 결론을 내고 있어요.
그런데 실상은 반대로 표준화 비중이 높죠. 이른바 "상담사들은 기계 같아요"라고 누구나 공감하는 배경이랄까요. 표준화 문제에 대한 근본 배경을 찾다 보니, 저예산 고효율에 목마른 고객사와 요구에 맞춰 생산성을 높이려는 고객센터와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부분은 '고객센터 하청 소속' 정규직이나 단기 계약직으로 채용 이후에 부작용(이라고 말하고 상담사의 불만이라고 쓰는)이 반복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으로 생각이 연결되더라고요.
2-4. 고객사를 대표하는 하청 상담사의 딜레마
물론 상담사도 고객센터 입사 후 교육 과정부터, 고객사를 대표해 상담을 하지만 처우가 (고객사 대비) 크게 다르다는 것을 잘 알죠. 그 당시에 저는 은연중에 어떤 감정이 들었냐면 '(고객사와 동일한 대우를 받기란) 불가능한 건 아는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객사의 소속감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때문인지 가끔 고객사에서 선물이 왔을 때 저를 포함해 동료들 모두가 좋아했던 모습도 기억이 나네요.
그렇기에 논문에서 언급했던 소속감, 애착심, 업무 환경부터의 차이가 앞서 언급한 '부작용'의 근본 배경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고객센터 1개월 내 단기 퇴사율이 높거나, 목표 채용률 그리고 채용 후 교육 전환비율이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하면, 고객사 입장에선 '표준화'를 최대한 시키는 것이 교육 직후에 바로 상담 투입을 해도 문제가 적을 거라고 판단하죠. 결국 스크립트와 매크로, 프로세스 강화로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해봤어요.
높은 자율성과 소속감 제고가, 반드시 모든 고객사에게 (상담사) 퇴사율을 낮춰서 상담 품질이 좋아지고 실적 향상에 기여할 거라고 장담은 못하겠어요. 하지만 하나의 구조개선 방안으로서 실험해보는 방법으로 제고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확실히 제안드릴 수 있어요.
고객센터 퇴사율이 높고 채용률 유지가 어렵다면, 단순문의 자동화 비중을 과감하게 높이거나(예: 챗봇, 보이스 봇, 매크로) 근무 형태를 다양화하거나(예: 파트타임, 풀타임 병행) 아니면 고객센터와 협업하여 MZ세대를 정착시킬 수 있는 복지 정책 및 관리자 교육을 같이 재정비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고객센터 복지 기획안중에 단순하지만 좋았던 Best Practice는 고객사 내에서 인테리어나 부착용으로 사용되는 포스터, 이미지 등을 하청 고객센터 건물에 배치해주거나, 굿즈(예: 로고가 인쇄된 사원증 목걸이)를 상담시간 내에만 사용하는 전제 하에 배포하는 형태, 프로모션으로 장기근속 시 고객사 쿠폰 증정 혜택 등도 소속감 증진 차원에서 반응이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2-5. 고객 경험을 높이려는 고객사의 노력들
일부 고객사는 최근 들어 자회사를 설립하거나, 자체 직고용 및 교육 방식으로 고객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려 노력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 경우는 단순 상담의 비중이 낮거나, 고객 경험을 고객사에서 자체 관리하고자 할 때 유용한 방법이고 가장 큰 장점은 프로덕트 변동이 있을 때 전파가 빠르면서 책임소재 구분도 확실한 거죠. 절충안으로 민원팀을 고객사에서 자체 채용한 뒤, 프로세스 개선에 시간을 버는 사례도 있었어요.
공지사항 전파 방식의 차이
고객사 변동사항 발생 -> 고객센터 센터장 -> 고객센터 실장, 팀장 -> 고객센터 상담사
고객사 변동사항 발생, 자회사 내용 인지 -> 자회사 운영팀 또는 상담사 전파
이렇게 단순화가 가능한 배경은, 고객사의 '보안 이슈'에서 자회사는 비교적 자유롭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자체 채용하면 복지 수준을 고객사와 유사하게 공유해야 하니, 인건비와 운영 비용이 크게 증가할 수 있죠. 그래서 고객사 입장에서는 [프로덕트의 표준 객단가 또는 평균 매출이 어떻게 되는가, 단순 상담 비중이 어떻게 되는가, 표준화 vs 맞춤형 고객 경험 중 어떤 전략이 유효한가]를 판단해서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여요. 만약 1:1 맞춤형 상담 전략이 좋은데, 고객센터에 상담 하청을 의뢰해야 한다면 고객사의 조직 문화를 잘 녹여낼 수 있도록 정교한 주문이 중요할 것 같아요.
최근에 꽤 인상 깊었던 하청 형태로, 상담사를 풀타임이나 파트타임 시간당 월급으로 지급하는 것이 아닌 '상담 건당' 지불 BM으로 진출한 고객센터 회사가 있었어요. 예를 들어, 작은 이커머스 회사가 단순문의 건 자체도 적은데 변동도 들쭉날쭉하다면 가장 비용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죠. 대신 비용 시뮬레이션했을 때 최저임금 수준보다 유의미하게 낮은 경우에만 의미가 있어요. 예를 들면,
운영비용 지출 시뮬레이션
2023년 최저임금은 시간당 9,620원으로, 월 급여로 환산 시 2,010,580원
1 콜당 1,500원(Inbound, Outbound 공통) BM인 하청 고객센터가 있다고 가정
이 하청 고객센터에 일일 100건의 통화 수요가 예상될 때
@는 인건비 이외에 인프라 수수료, VAT 별도 등 상황 가정
실제 금액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정확한 정보는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주 소정근로 40시간, 유급 주휴 8시간 포함. 제공 최저임금위원회
A. 하청 고객센터, 프로모션 X, 일일 100 콜 산정 시
100 콜 x 1,500원 x 25일 (월-금) = 월 운영비용 3,750,000원 + @
B. 상담사 직고용
100 콜 x 1,000원 x 25일 (월-금) = 월 운영비용 2,500,000원 + @
C. 상담사 직고용, B 케이스에 첫 3개월 정착 프로모션 50만 원 추가
100 콜 x 1,200원 x 25일 (월-금) = 월 운영비용 3,000,000원 + @
이렇게만 계산해봐도, 상황에 따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큰 그림이 보이실 거예요. 콜당 단가가 200원, 500원 차이로 작아 보이지만 계산하면 상당히 큰 금액이죠.
2-6. 인공지능은 단순 상담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까
물론, 아래 사례처럼 우리나라도 AI(인공 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가 단순 상담을 완전히 대체한다면 상담사의 역할이 크게 달라질지도 모르겠어요. 언젠가 현실이 된다면 상담사는 대외 민원이나, 심리상담처럼 고객사의 입장을 법적으로 방어하거나 심화된 심리 공부를 한 사람만 남게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최근까지의 업계 동향을 생각해보면, 텍스트 기반으로 매크로, 챗봇, 음성 인식과 앱 연동을 통한 메모 정도만 사용되고 있어 아직은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어요.
https://youtu.be/JvbHu_bVa_g
출처: Youtube 'Mashable Deals', Google's AI Assistant Can Now Make Real Phone Calls, 2018-05-10
2-7. 상담사의 장점과 성장 가능성
대부분의 상담사들(특히, 하청 고객센터 소속인 경우)은 용돈벌이나 경력단절 예방 또는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업무 자체를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이는 안타까운 사례들을 자주 목격하는데요. 사회 초년생일수록 상담사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장점은, 한마디로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장/단점을 점검하고 직장 내에서 개선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규모가 있는 고객사일수록 높은 수준의 품질 관리 체계가 구축돼 있고 코칭을 주기적으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 실수하는 것보다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발전할 여지가 훨씬 크다고 볼 수 있죠.
성장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해요. 실적이 좋을 경우, 서비스 운영부터 시작해 기획까지 아우를 수 있는 기회를 타 직군 대비 비교적 빨리 얻을 수 있어서 기여도에 따라 고객센터나 심지어 (드물지만) 고객사에서 좋은 기회를 제안받을 수도 있어요.
상담을 하면서 고객 경험 향상에 기여한 사례, 분쟁을 창의적으로 잘 조정한 사례, 기획 제안으로 프로세스가 개선된 사례 모두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꼭 미리 기록해두시길 권해요. (정보보안에 문제가 안 되는 범위 내에서.) 나중에 이력서나 포트폴리오, 경력기술서에서 쓸 이야기가 많아지게 돼요.
3.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우리가 고객 경험에 관심이 필요한 이유
고객 서비스는 우리가 이용하는 모든 생활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요. 복잡하게 얽힌 업계 고차방정식을 개인 한 사람이 어떻게 영향력을 줄 수 있겠나 싶고, 기업마다 적용하는 방식도 다르겠지만, 앞으로 고객센터 운영에 대한 회고, 고객 경험 개선을 위한 방법론이나 인사이트로 글쓰기를 시작해서 점차 범위를 확장해가며 전달해드릴 예정이에요.
예를 들어 당장 체계를 바꿀 수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미 진행하고 있는 모범 사례를 소개하는 방법이 있겠죠. 기회가 된다면 지난 8년 동안 겪어왔던 스타트업, 대기업, 고객센터 업무 이야기들도 기록으로 남겨볼게요.
앞으로 보여드릴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