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연말이 다가올 즈음에 고민하다가 점을 봤다. 이젠 세상이 더 좋아져서 해외에서도 연락을 할 수 있으니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도 있겠지만 말이다. 짧은 시간에 문자로 해야 하고 물론 그래서 가격이 더 비싸다고 느껴졌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민을 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예약을 하고 점을 봤었다. 정말로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불안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어수선한 마음이 금세 가벼워지기도 했다.
오랫동안 재미 삼아 사주를 공부하는 친구도 그렇고 점을 봐주신 분도 그렇고 비슷한 맥락의 공통적인 조언이 있었다. 친구는 화가 난다고 행동으로 혹은 말로써 섣불리 화를 내지 말고 그 화를 다스려야 한다고 했었다. 그게 본인의 안 좋은 기운을 누를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던 거 같다. 점을 봐주신 분도 마음의 먼지들을 글로 쓰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한 글들이 신기하게도 여기저기 흩어져 떠다니는 잡생각들을 사라지게 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이란 그리 쉽게 다잡아 지지는 않는 법이다.
그때의 어느 날 운세에서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라고 했다. 새해부터 일은 왜 이렇게 많았던지 그리고 왜 다 자리를 비우는 시즌인지 짜증과 화가 났지만 자꾸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에게 역시나 분노의 신은 찾아왔다. 어느 날 나는 일을 마치고 지친 몸으로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맨 위칸에 올려두었던 가방끈이 바로 아래 사물함 문 사이에 끼어있었다. 처음도 아니고 같은 자리에서 두 번째였다. 게다가 지난번 껴있던 가방끈을 자른 후라서 신경 써서 가방끈을 잘 정리했건만 다시 또 내 가방끈은 굳게 닫힌 문에 껴서는 움직이질 않았다. 지친 몸과 쌓인 짜증이 솟구쳤다. 정말로 화가 났다. 고의든 아니든 왜 굳이 내려와 있는 나의 가방 끈이 걸린 채로 문을 닫았는지 화가 났다. 옆에서 이 상황을 지켜본 친구는 웃다가 같이 화를 내다가 길게 항의의 편지를 티슈에 적어 붙여두었다.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누구여도 화가 날 일입니다.라고 덧붙이고 싶었다.
저녁에 일하는 동안 쌓인 피로와 짜증에 퇴근까지 이러다니 정수리까지 순간적으로 치솟는 화에 빼액 소리를 질렀지만 그렇다 그런다고 될 일은 없었다. 그래도 친구가 영어 버벅거리는 나를 대신해 항의를 해주었지 않았나. 그거면 된 거다 하면서 나는 터져 꺼져버린 오븐처럼 모든 걸 내려두고 옷을 갈아입고 퇴근을 했다. 그러고선 머릿속으로 용서의 신을 형상화하면서 되뇌었다.
용서하자. 용서하자. 고의든 아니든 뭐든 다 떠나서 그냥 용서하자.
하지만 요즘의 나는 모든 걸 용서하면서 살기에 나는 역부족이라는 생각뿐이다. 사주에서 화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화를 내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화는 나를 향하기도 한다.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하는 나의 기질은 성인이 되고 사람들과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하면서 극한의 단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타인에게 나는 너무 나이스한 사람이지만 그저 나이스 할 뿐인 것이다. 화를 내고 돌아서서 후회를 하고 화를 내지 않자니 이 스트레스와 짜증을 이길 도리가 없었다. 결국 이 화는 나를 향했다. 이 모든 화를 결국엔 내가 자초한 것이라는 후회와 화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내가 싫어졌다.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평소엔 두통을 겪을 일이 거의 없는데 화를 분출하지 못한 나는 이틀을 두통에 시달렸다. 이 두통을 향해서 모든 게 그 짜증 때문이라는 타인의 말은 자기혐오라는 말로 귀결되고야 말았다.
아 신이시여. 저는 왜 때문에 도대체 왜 때문에!!
자기혐오는 날 무너뜨리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나를 향한 분노와 그로 인해서 내가 싫어지는 이 감정의 프로세스는 날 한없이 저 아래로 끌어내린다. 결국 퇴근 전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 엉엉 울면서 내가 너무 싫노라 고백했다. 하루종일 화를 못 이겨 짜증을 내는 나를 나는 너무나도 싫어하고 있었다. 울음을 멈추고 얼른 퇴근을 서둘렀다. 화가 나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날이었다. 시간이 늦어 문을 연 식당은 없고 친구랑 통화를 하며 맥도날드로 향했다. 오랜만에 햄버거 세트를 사들고 돌아와 첫끼를 먹었다. 먹은 음식이 쉬이 넘어가지 않아 몇 번 가슴팍을 두드렸다. 화를 내지 못한 짜증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나는 또 그렇게 지쳐버렸다. 나를 갉아먹는 곳은 떠나야 한다. 다음날 새로운 곳의 인터뷰가 잡혔고 난 서둘러 모든 일을 처리하고 먼 곳으로 떠나기를 마음먹었다. 물론 나의 결정이 극한의 스트레스뿐만은 아니지만 모든 시기들이 겹쳐 나의 이 결정을 등 떠밀었다. 더 이상 나아지지 않을 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으니 숨통이 트였다. 이제 남은 건 퇴사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일이다. 임시 비자 체류자의 인생을 바꿔 줄 방법이 있는 게 아니라면 누구도 나의 결정에 대해서 뭐라 말할 수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이스한 사람의 마지막 배려는 지켜보겠다 생각한다. 물론 그들에겐 나의 퇴사가 결코 나이스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나도 내가 살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주의 불이 많고 한여름의 태어난 나는 그래서 화를 조심해야 하나보다. 매일매일 잘 다스려야 하는데 역시나 속으로는 금세 뻗치는 짜증은 쉽지 않다. 나를 무너뜨리는 이 감정의 프로세스를 이제는 끊어내야 한다.
후 후 심호흡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