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을 가득 채우는 하나 된 목소리로 찬양이 울려 퍼진다. 하얀 상의를 입은 사람들이 지하철역에서, 모퉁이에서 속속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며 동시에 질서 있게 자리를 잡고 있다. 조금 쌀쌀해진 날씨 탓에 아이들 옷깃을 단속해 본다. 혹시나 놓칠세라두 아이들 손을 꼭 잡고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아 준비해 온 돗자리를 깔았다.
대한민국 크리스천, 광장으로 모이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도 대형집회도 참여해 본 적 없는 초개인주의적 인간인 나. 집회라는 형태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 하나 나선다고 사회가 변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컸다. 그러나 이번엔 마음가짐부터 달랐다. 오히려 거룩한 사명마저 느껴졌다.
이 날을 얼마나 고대해 왔던가! 두 달여간의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주최 측 추산 110만 명이라는 유래 없이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광장으로 나왔다. 지방에 있는 성도들은 새벽같이 버스를 타고,더 먼 곳에 있는 분들은 하루 전에 도착해서 예배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광화문에 이어 여의도까지 장소가 두 곳으로 넓혀졌다. 덕분에교회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연합예배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아이들과 어렵지 않게 가게 되어이 또한 감사했다.
도대체 왜 모여야만 했는가?
지난 7월, 대법원은 동성 파트너에게 건강보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합법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전문가들은 차별금지법 통과를 다음 수순으로 보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일련의 사태가 건강한 가정의 개념을 흔들고, 기독교 정신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위협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이미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설교를 한 목회자들이 체포되거나, 기독교인이 공공장소에서 성경을 소지한 상태로 연행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따라서 교회가 먼저 하나가 되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온전한 예배와 기도를 하겠다는 것이 이번 10.27 연합예배의 가장 중요한 취지다. 다시 말해, 사회적 책임과 기독교적 가치 수호라는 기치 아래 교회밖으로, 세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른 것이다. 한국교회를 포함한 우리가 소위 '거룩한 방파제'가 되어 가정과 다음세대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을 실행하는 대단한 시작이라 하겠다.
크리스천은 정치적이면 안된다?
지금까지 갖고 있는 선입견이 하나 있었다. 바로 크리스천은 되도록 정치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좌. 우로 나뉜 이념적 이데올로기에 영향받지 않고 교회 안에서 조용히 예수님만 따르는 그런 신앙인. 물론 그것이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크리스천이기에 더더욱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가정과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기 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교회를 다니면 그저 선한 모습으로 조용히 나라와 위정자를 위해 기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내 모습이 순진해서 갸륵할 지경이다.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분위기가 그래왔고, 표현과 신앙의 자유를 마음껏 누림으로 사회적 흐름에 경각심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성경을 보라.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모세,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총리였던 다니엘, 다윗 왕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믿음의 사람들은 지도자이자 리더로 정치활동을 했다. 그저 오래되고 익숙한 옛날이야기로만 치부하기엔 시대를 초월해서 지금 현재에도 적용할 만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개인적 큰 변화도 있었다. 무척 순진하게 설교시간과 공과 시간에 그저 흘려들었던 성경의 많은 시사점들, 특히 정치에 관련한 이슈들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언론과 미디어의 편향된 시각에 대해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관해서도, pro-life 운동과 문화 막시즘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더 찾아보고 공부했다. 한 가지 주제에서 시작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여러 배경과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매우 편향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분별력 없이 그저 뉴스를 받아들이기만 했었던 점을 반성했다.
10.27 이후, 무엇이 변화하는가?
일각의 우려와 염려 속에서도 단연 이번 10.27 연합예배는 큰 성과가 있었다. 창조 질서를 부정하는 성오염과 생명 경시로 가정과 다음세대가 위협받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선언문을 통해서도 크리스천들의 결단을 잘 엿볼 수 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계속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 한마음으로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행동하는 신앙인들이 더 많아졌다는 것은 단연 감사할 일이다.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눈에 띄는 변화도 감지된다. 감리교에서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 한 국회의원이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소신을 밝히며 인권위를 질타한 것, 외신들이 10.27을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영국 BBC에서는 이를 다큐로 만들고 싶다는 제안을 한 것등이 이를 증명한다. 더하여, 비기독교인들도 이번 연합예배를 통해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그 심각성에 대해 알게 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이번 연합예배를 통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자, 대한민국의 국민 한 사람으로 나라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매우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물론 당장 뛰쳐나가 정치를 하고 사회운동을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영적 각성을 통해 가정과 나라를 더욱 사랑하게 된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유민주국인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변화된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나의 가장 큰 소득이다. 이제 믿음을 가진 성도이자, 분별력을 가진 사람으로 사회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고 행동하는 거룩한 신앙인이 되고자 한다.
바라기는 더 많은 크리스천들이 가정과 나라의 가치를 수호하고 사회 곳곳의 리더가 되어 사회를 바로 세우는 영향력 있는 위치에 가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