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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Nov 29. 2024

영 크리스천에게 고함

교회누나의 신앙 카운셀링을 시작합니다

영 크리스천(Young Christian)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할까?


다음세대를 위한 교회의 기도와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전방위적 혼란이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며, 기독교인들조차 옳고 그름을 분별하여 성경적 가치를 수호하기 어려운 때가 되었다. pc주의 Pro-choice 등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자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반성경적 가치들이 어느새 거부감 없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으며, 어린 세대일수록 거부감이나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기류를 차치하고라도 젊은 세대들이 가진 현실적인 고민, 이를테면 취업과 일, 결혼과 출산이라는 개인의 중요한 일들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나 하나 건사하기도 고단한 시기에, 영 크리스천으로서 도대체 어떻게 인생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다. 어쩌면 신앙은 교회에서만, 그리고 세상에서의 삶은 전혀 크리스천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왜 이렇게 잘 아냐고? 바로 오래지 않은 과거에 내가 겪어온 일이기 때문이다. 



20대, 그때 나는 어떤 신앙인이었나?


어릴 때부터 착실히 교회를 다니던 청년들이 가장 많이 방황을 하는 시기가 바로 20대 시절이다. 입시압박에서 벗어나 대학 혹은 사회생활을 하며 그동안 누리고 싶던 각자의 자유를 찾아 멋모르게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부딪히는 열정의 때이기도 하다. 나도 20대 초반엔 대학생활이 주는 통제 없는 자유로움과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것 같은 왠지 모를 뿌듯함에 세상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고 어느새 신앙과 교회생활은 우선순위에서 차차 밀려났다. 


다행히 하나님의 때에 강한 손으로 나를 돌이키신 은혜로 인해 방황의 시기가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나를 단련시키신 것만은 확실하다. 그 후 예수님이 누구신지,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한 거룩한(?) 탐구심에 의거해서 남들이 보기엔 매우 독실한 크리스천 청년이 되었으나 정작 그 시기에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한 고민은 커져갔다. 


물론 말씀과 기도가 가장 기본이고 중요하지만, 나에겐 나보다 조금 앞서 인생을 살고 있는 신앙의 카운셀러 혹은 멘토가 절실했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면서도 고민해 대한 해답은 세상에서 찾으려 했던 나의 모습이다. 세상의 자기 계발서, 대학교내 멘토링, 비기독교인 선배들의 카운셀링... 물론 이런 것들을 참고할 수는 있겠으나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이 빠져버린 도움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의 결핍에서 출발했습니다


어느덧 결혼한 지 10년이 되어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기르고 있고, 교회에서는 리더로 섬기고 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있다면 내가 더 어릴 때 가까이하고 배울 수 있는 신앙의 카운셀러가 부재했다는 점이다. 신앙인은 많았지만, 내가 닮고 싶거나 내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크리스천은 찾기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당시 나의 교만함이나 무관심으로 인해 그런 거룩한 영적 선배를 놓쳐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혹은 당시 미숙한 마음에 공동체를 불편해하고 피했던 나의 오만함 때문일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하든 혼자 고고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가기에는 어려움과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러한 나의 결핍 때문에, 더더욱 영 크리스천을 위한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일까? 3년 전부터는 남편과 함께 신혼부부팀 리더로 부름을 받았고, 그곳에서 나와는 10살 이상 차이나는 영 크리스천을 만나게 되어 본격적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되었다. 신혼부부팀을 처음 맡게 될 때 가졌던 세대차이에서 오는 부담감보다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신앙적으로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를 고민하게 되었다. 


옳고 그름보다는 서로 다름을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는 시대에, 성경적 가치를 확실히 전하는 일은 꼰대 같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역할이라면, 그리고 그 역할이 리더인 내게, 영 크리스천을 품고 있는 내게 주신 사명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이 예수님이 핏값으로 세우며 사랑한 교회가 그리고 선배 크리스천인 내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교회누나의 카운셀링, 하나하나 풀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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