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관 전쟁]을 읽고
세계관이란 이 세상에 대한 신념의 총합으로써 일상적인 결정과 행동을 지시하는 커다란 그림이다
-찰스 콜슨(Charles Colson)
바야흐로 세계관 전쟁이 한창이다. 크리스천의 눈으로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영적 전쟁 중이다.
세계관에 대해 고찰하면서 지금의 주도적인 시대정신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는 소위 '자연주의 혹은 인본주의 세계관으로 불리는 시대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자연주의 세계관이란, 눈에 보이는 자연 세계가 전부이며 자연 세계를 초월한 초자연적 세계나 절대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세계관이다. 절대자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절대자가 정한 진리나 윤리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모든 도덕적 기준은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정해진다'는 도덕적 상대주의와 '모든 문화는 도덕적으로 동등하나'는 문화 다원주의를 낳았다. 이 같은 세계관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교육과 대중문화와 법에 녹아들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아 가고 있다.
p.20 [세계관 전쟁] by 이태희
따라서 모든 일에 있어 진리와 비진리 혹은 옳고 그름의 경계선이 허물어져 버렸다.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성경의 진리를 기초로 한 분별력의 회복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 세계관, 혹은 성경적 세계관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크리스천들조차도 세상의 가르침과 기준에서 방황하며 따라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단순한 종교적 진리를 넘어, 아브라함 카이퍼가 말했듯이 법, 도덕, 교육 등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 걸쳐 적용되는 유일한 질서라고 할 수 있다. 이 것이야 말로 영적전쟁을 승리로 이끌 핵심이란 것을 밝혀두고 싶다.
이 글에서는 이태희 목사님의 [세계관 전쟁]이란 책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인지를 고찰하고 나누고자 한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박국 1:2
선지자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고 현재를 살아가는 자들에게 피할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며, 하나님을 향해 끊임없이 울부짖는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하박국, 예레미야 선지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악을 선으로 둔갑시키며 죄악이 만연해 가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은 참된 신앙인이 아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충돌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사상에만 그치지 않고 교육, 문화, 입법 등 다양한 영역을 아우른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 세계관과 대척점에 있는 자연주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이 결과에는 철학, 신념, 생물학, 윤리, 법, 문화 제도 등 광범위한 영역을 포함한다. 어찌 보면 무서우리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이 바로 이 세계관 전쟁의 결과로 파생된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근거로 현실을 보고 해석하는 힘, 그리고 전달하는 능력이 선지자적 소명을 가진 이 시대 크리스천에게 요구되는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조선을 다녀간 선교사 및 외국인들의 조선에 대한 묘사는 전혀 희망적이지 않다. 영국의 이사벨라 비숍은 조선을 '상류계급은 아무런 생산 활동을 안 하고, 중인계급은 정치적, 사회적 진출이 막혀 있어서 맡겨진 일만 하고, 하류계급은 더 일해 봐야 늑대에게 빼앗긴다. 조선은 가렴주구의 나라, 정의가 결여된 나라, 미신의 나라다'라고 결론지었다. 심지어 루이스 밀른이라는 미국의 작가는 조선은 망할 것 같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만큼 희망이 결여된 비참한 나라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00년 후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나라가 되어 있다.
이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대목에서 저자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서양의 경제적 활기는 종교개혁의 열매다'라는 혁명적 선언을 한 막스 베버를 인용한다. 오직 성경(Sola Scripura), 만인제사장론, 윤리도덕의 회복이라는 종교개혁의 핵심을 통해 미국의 발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 문명 발전의 뿌리는 교회와 기독교라고 설파한다. 개인뿐 아니라 나라와 민족까지도 어떤 세계관에 뿌리내리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140여 년 전 서구의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기도로 이 나라의 뿌리와 정신이 바뀌게 되었음을 인정한다. 교과서에서는 철저하게 기독교와 선교사들의 역할을 축소하거나 왜곡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뿌린 씨앗의 열매를 누리고 있음이 자명한 사실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 마태복음 10:34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크리스천이 말하는 성경적 진리를 제대로 인식하며 그것이 세상에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사도 바울도 복음 때문에 죽음을 불사하고 끝까지 사명을 다했다.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 바로 기독교 세계관이며 이 싸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따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며 때로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 역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각오가 필요하다. 더하여,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 핍박받는 크리스천과 교회는 더 강력히 성장하게 되어 있다. 위의 마태복음 말씀처럼 '검'을 든 사명을 이해하는 교회가 더 많아지기 바라는 바다.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으면서도 세속적 세계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책에 따르면, 특히 현대사회는 세상을 이분법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 즉, 사회 전체를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으로 분리시켜 놓는다. 정부, 대학, 기업 등의 사회적 기관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가정이나 교회 개인 관계 등의 사적 영역으로 놓는다. 또한 공적인 영역은 과학적 지식이 다스리는 객관적 영역으로, 사적인 영역은 개인적 선호가 다스리는 주관적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것이 왜 문제가 될까?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성경적 관점이 공적 영역에서 설득력을 갖지 못하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예를 들어 '창조론이 옳다'는 주장에 대해 사람들은 창조론 자체를 종교라는 사적 영역에 집어넣음으로써 개인 선호도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므로 크리스천들이 공적 토론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면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방안을 고찰해야 하며 더욱 철저하게 기독교 세계관에 뿌리내려야 할 것이란 결론을 얻는다.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린도후서 10:5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이들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자녀가 되었지만, 가치관은 아직 변화되지 않은 것이다. 쉽게 말해, 성경의 가르침은 교회 안에서만 유효하며 세상에서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적지 않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성경적 진리를 통한 가치관의 재확립이다. 교회와 세상이라는 두 세계를 왔다 갔다 하는 분열적 세계관을 기독교 세계관으로 뿌리내려 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열심을 다해 핍박하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비늘이 벗겨져 바울이 된 것처럼 이러한 회심과 성화의 역사가 모든 크리스천에게 있어야 한다.
부끄럽지만 나 조차도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온 크리스천이었기에, 한 번에 이에 대해 이해하거나 깊이를 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적 비늘이 벗겨지고 성경의 진리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이 점차 선명해진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감사한 큰 변화다.
이 땅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진리를 깊이 깨달아 기독교 세계관으로 무장하여, 진리를 통해 분별력을 갖추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명기 말씀을 지키는 빛과 소금이 되길 진심으로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