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나온 부모의 사명을 깨닫는 시간
기독교 교육? 받으면 좋겠지.
불과 반년 전까지, 딱 그 정도의 마인드였다. 아이들 기독교 교육에 대한 나의 생각 말이다. 거의 평생을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아이들을 기독교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참 낯설고 크게 고려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제도권 교육을 벗어난 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부모들의 치맛바람과 과도한 사교육에 휩쓸리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었던 나의 교육철학도 동네 엄마들을 만나거나 입시를 생각하면 하염없이 흔들리기 일쑤였다.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은 아이의 학교생활 점검과 동시에 괜찮다고 소문난 학원 스케줄을 잘 짜주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세팅에 나름 자족하며 살고 있었다. 교회 주일학교와 매일 드리는 가정예배가 있으니 아이 교육도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초등학생인 큰 아이는 학년이 올라가면서부터 학교에서 배우는 진화론 기반의 과학적 설명과 인권에 관해 반성격적, 혹은 비성경적인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다. 아차 싶었다. 심지어 아이는 교회에서 배운 창조주 하나님과 학교에서 배운 과학 내용이 다른 것 같다는 인지를 하며 이것저것을 질문했다. 아이의 표현이기에 학교에서 정확히 어떤 것을 배웠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고, 일일이 학교에 전화해서 묻기도 쉽지 않았다. 황급히 아이에게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전달하긴 했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의 혼란이 온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크리스천 학교에 가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 기독교 컨퍼런스에서 '크리스천학교'에 대해 자세히 접할 기회로 인함이다. 한번 알아나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기독교 학교의 설명회에 참석했고 호기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의사결정에 신중한 남편이 오히려 결정을 서둘렀다. 우리 부부는 본격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고 결국 학교를 위해 이사까지 감행하기로 했다. 실로 삶의 큰 변화였다.
'교육은 한 세대의 영혼을 빚는 작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요한 일이다. 특히 단순한 지식 전수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매우 중대한 일이기에 부모로서 결코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론으로만 이해했었는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이러한 교육의 중요성이 새삼 피부로 와닿는다.
특히 교육이 가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성경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우리 가정은 기독교 학교 선택에 그만큼 동기가 더해졌다. 가정의 역할을 대체할 정도로 공교육의 힘은 과거에 비해 커졌고, 세상교육에서 반성경적 가치를 주입하는 것에 대해 항의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부모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깊어졌다. 물론 공교육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하고, 모든 크리스천이 공교육을 떠나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부부가 한마음으로 인도받는 것이 큰 증거가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도 새로운 동네와 전혀 다른 스타일의 학교로 옮기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이런 결정을 하고 보니, 대안학교와 홈스쿨링을 하는 가정이 예상보다 많다는 것도 발견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가 보다. 예전에는 도저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홈스쿨링도 꽤 괜찮은 교육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요즘은 홈스쿨링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어서 학습자료나 정보 공유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을 보니 시대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 같으면 학교밖으로 나가는 아이들을 색안경을 끼고 봤을 텐데 말이다.
크리스천 학교에 아이들을 보낸다니 주변에서 굉장한 관심을 갖는다. 어떻게 기독교 학교를 보내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적어도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바로 성경적 세계관, 기독교 세계관으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싶어서다. 그 동기가 강했기에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감행할 정도로 과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기독교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이는 우리 가정에게도 큰 도전이었고 용기가 필요한 결단이었다. 공교육이 제공하는 여러 가지 혜택을 포기해야 했고, 혹시라도 아이들이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 또한 존재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 또한 하나님께 맡기기로 했다. 이 결정 이후에 오는 과정과 결과는 오직 믿음으로 인도받아야 하는 부분이리라.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명기 6:4-9]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쉐마'라고도 불리는 신명기 6장의 말씀과 잠언 22장 6절의 말씀을 묵상해 본다. 너무나 자주 들어 익숙하지만 이제서야 깨닫는 은혜가 있는 말씀이기도 하다. 가정과 부모는 자녀 교육의 최우선권을 가진 존재이자 사명자라는 것을 깊이 이제야 깨닫는다. 내 자녀가 기독교학교에 다니든 공립학교에 다니든 홈스쿨링을 하든 관계없 이 성경은 부모에게 자녀교육을 명령하셨음을 확인한다. 이를 제대로 모른 채 아이를 키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요즘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새로운 학교에서 잘 적응 중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성경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가치관을 세울 수 있는 귀한 나날들이다. 물론 엄마로서 바빠진 것도 부인할 수 없겠다. 학원이 아니라 엄마인 내가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학교생활 지원을 해야 하니 몸이 조금 고되긴 하다. 그러나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에 이 자리에 나를 부르신 것이라는 믿음은 나날이 더욱 깊어진다.
말라기 2장 15절 말씀처럼 경건한 자손을 길러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엄마로서의 최고의 사명과 축복을 날마다 깨닫길, 그리고 그 과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