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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징니 Feb 07. 2017

잠겨있는 세계를 열고 싶다면

영화 <어라이벌 a.k.a 컨택트>를 보고 쓰다

몇 년 전, 중학생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생활해야 하는 캠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캠프에서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가장 먼저 했던 일이 중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때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그건 대학생인 내가 중학생 아이들의 세계에 편입되기 위한 공부고 준비였다. 중학생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중학생들의 언어를 알아야 했던 것이다.


Arrival (2016)


<어라이벌>은 <그을린 사랑>(2010),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등을 연출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첫 SF 장편 영화로, 테드 창의 SF소설 모음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미국을 비롯한 12개 국가에 동시다발적으로 외계비행물체 셸이 출현한다. 셸이 가만히 떠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각국 정부는 저마다의 방법으로 셸에 접촉하기 시작한다. 미국 정부는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에게 외계 생명체 언어 해독을 요청한다.


헵타포드의 언어를 해독하려고만 하던 사람들과 달리, 루이스는 인간의 언어를 헵타포드에게 가르치고 이를 통해 헵타포드의 언어를 배우려는 시도를 한다. 루이스에게 콜로넬(포레스트 휘태커)은 그 방법이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것은 아닌지 이의를 제기하지만, 루이스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우리의 언어를 가르쳐주는 것이 헵타포드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는 데 성공하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는, 그들의 시간을 살아가는 유일한 인간이 된다.


그러니까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은 곧 헵타포드의 세계와 시간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언어를 안다고 해서 자연히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계비행물체가 나타난 12개국은 모두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소통은 단절된다. 이러한 국가 간의 소통 불화로 인해 루이스-헵타포드의 교감이 주는 전율이 더욱 커진다. 루이스와 헵타포드 간의 소통에는 언어 외의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말이다.


루이스가 헵타포드와의 소통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진심으로 그들의 언어를 알고 싶어 했고, 그리고 그것을 사용해 그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헵타포드에게 'HUMAN'이라는 글자를 가르치기 위해, 미지의 생물체가 주는 두려움도 무릅쓰고 방호복을 벗어던진다. 그리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내보인다. 그렇게 루이스는 헵타포드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러분은 국문학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결합식을 외울 필요는 없고 원리만 간단히 이해해도 충분합니다. 그런데 저는 카톡을 보내거나 할 때 ‘봬요’라고 하지 않고 ‘뵈어요’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뵈요’가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하고, 소통하려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대학에서 더욱 중요한 지식을 계속 배워나갈 것입니다. 점점 부모님보다 아는 것이 더 많아질 테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고 곧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봬요’를 ‘뵈어요’로 풀어쓰는 것처럼, 배운 것을 활용해 모두와 소통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185p)


부모님이든 친구든 상사든,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괜히 나온 제목이 아닌 것이다(별로 좋아하는 책은 아니지만).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상대방의 세계를 기꺼이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일 듯하다.  중학생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중학생들의 언어를 배우려 한 것처럼, '봬요' 대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뵈어요'로 풀어쓰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서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언제까지나 굳게 잠겨있을 것이다.





P.S 1) 왜 영화를 수입해 오면서 제목을 <컨택트>로 바꾼 것인지 1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원작 소설은 [네 인생의 이야기], 개봉명은 <Arrival>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니 <컨택트>가 되어있는 미스터리. 좋지 않은 처사라 생각해서 개인적으로는 어라이벌이라는 제목을 사용한다. 이 글의 부제에는 'a.k.a 컨택트'를 붙임.

P.S 2) 글은 언어와 소통이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썼지만, 이외에도 이야기할 거리가 차고 넘치는 영화다. 언어를 통해 시간을 다루는 방식, 세련된 비주얼, 에이미 아담스의 연기, 요한 요한손의 음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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