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들에게...
이쯤 되니 어디에서 시작됐고 누구에서부터 나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저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양쪽 모두에게 겁나 험한 것이 ‘환자’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당장 수술이 필요한 환자도 아니고, 이번 시끄러운 일에 속해있는 어떠한 이해관계당사자 무리도 아닌 그저 하루하루를 어떡하면 내 가족들과 잘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K-직장인입니다. 그래서 딱 그 정도의 포부만 가지고 있고, 딱 그 정도의 시야와 딱 그 정도의 인내심 정도만을 가지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갈등의 당사자인 높으신 분들이 저를 볼 때는 그야말로 보잘것없고, 의미 없으며 편협한 시야를 가지고 있어 안타깝고 혀를 차며 측은하게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죠.
그렇다 하더라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요.
그래도 저 같은 ‘평범’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저뿐만은 아닐 테니까 그런 취급이 저의 자존감을 한없이 약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네.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죠.
그래도 사람은 사람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고, 저를 나아주신 아버지, 어머니, 장인, 장모님을 존경하는 아들이자 사위이기도 하죠.
네. 모두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렵습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서 남들보다 겁이 많은 건 아닐 테죠. 다른 사람들보다 잃을게 많아서 겁이 많은 것도 아닐 겁니다. 그래도 두렵습니다.
저는 환자는 아니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갑자기 병원이 필요하실 때 갈 수 없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두렵습니다.
또, 나이 어린 아이들이 매일 들려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 가족이 크게 다치면 어떡하냐고 걱정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그리고 또, 의사가 되고 싶은 제 딸아이에게 어떤 설명이 바르게 말해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머뭇머뭇하는 것이 두렵습니다.
진짜. 이쯤 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그래도 우리 모두는 사람입니다.
게다가 우리를 아이들은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책임’ 속에서 자랍니다. 우리 모두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책임을 다할 줄 알아야 ‘어른’이 된 거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해결할 수는 없지만 간절한 마음이 드는 일들은 보통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부쩍 많이 그리고 오래 기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부디 이 사고의 끝에는 누구부터 시작했는지 따지지 않고, 그동안의 실수를 탓하지 않고, 서로의 책임들을 그 자리에서 단단하게 완수할 수 있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