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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기록 Oct 03. 2024

헝가리어에서 살아남아 주기를

헝가리어는 아무나 하나.


"헝가리어 공부를 시작해야겠어"



 "차라리 영어 공부를 더 하는 게 어때? 





헝가리어를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그 초심을 지켜낼 수 있어야 한다.

헝가리에 살고 있다 할지언정, 헝가리어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이유보다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더 많아서, 우리의 의지를 계속해서 시험하기 때문이다.



'몇 년이나 그곳에서 살겠다고?' 


'헝가리어가 정말 어렵다던데.' 


'헝가리어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래. 알고 시작하는 거지?' 


'헝가리어를 배워도 헝가리를 벗어나면 쓸 일이 없는데, 왜 굳이 그 어려운 언어를 배우려고 해? 차라리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게 낫지 않아?' 


'그래, 헝가리어를 배운다고 치자. 그럼 누구랑 어디서 대화할 건데?'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나 선생님들과 유창하게 대화하려면 영어 공부를 더 하는 게 낫지 않겠어?'




듣다 보면, 모든 말이 일리가 있다. 

헝가리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조차도 배우기 어렵다고 혀를 내두르는 언어이니까.



ㅋㅋ 으악! 헝가리어 문법 수준! 고질라가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질라(헝가리어)와 사랑에 빠진 걸까?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헝가리어가 떠오르고, 

운전하면서 듣는 것도 음악이 아니라 헝가리어 오디오 파일이다. 

저 멀리 헝가리 지인이 다가오면 한 마디라도 나눠보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이 빨라지고, 

조금이라도 헝가리어 책을 들여다보지 못한 날에는, 

바빴던 하루가 야속하게 느껴지니까.


나조차 당황스럽게 만드는 이 열정.... 

대체... 뭐지?


"배운 것을 기록합니다."  


EZ AZ!!! 

아... 이거였구나!!!

마침내 부다페스트, 나의 블로그 소개 글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나를 떠올렸다.

나는 그저 영어 공부가 행복했던 사람이라는 것.




즐기는 놈에게 영어는 목표가 된다. 

목표를 향해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면 흐름이 생기고, 흐름을 타면 기회가 찾아온다. 

기회에 운까지 더해질 때, 뛰는 놈과 나는 놈 사이로 즐기는 놈이 날아오른다. 

실력의 높고 낮음은 다른 문제다. 왜냐하면 세상은 실력만 가지고 날개를 펼쳐내는 곳은 절대 아니니까.


20대, 나의 취미는 영어 공부였다.

어학연수를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나는 서울에서 한국인과 외국인이 직접 만나 문화를 교류할 수 있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창단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시기별로 파티를 개최하며, 여행도 기획했다. 

영어를 원 없이 써보고 싶다는 목표로 시작해 3년 넘게 운영했던 이 활동은 단순한 영어 공부를 넘어 내 인생의 방향을 이끌었다.


영어는 내 30대 청춘에 많은 기회를 열어주었다.

잡지나 매체에 인터뷰를 하거나 방송에 출연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놈의 영어 공부가 뭐라고.  '굳이' ㅋ 영어 한마디를 한 것이 출판사 기획자의 눈에 띄어 영어 관련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책의 성공으로 자기 계발서를 출간하는 단계까지 발전했고, 그 흐름은 글로벌 금융기업에 입사하여 홍콩, 여의도, 을지로를 누비는 커리어로 이어졌다.


40대가 되서야 엄마가 되었다. 

노산의 직장맘에게 취미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ㅋ 

홍콩 출장은 커녕, 을지로에서 여의도를 오가는 것만으로 헐떡이는 일상이었다.

아침에 출근해서 영어 한마디를 블로그에 남기는 것으로 간신히 끄나풀을 이어갔다. 


50대가 성큼 다가오니,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가 큰 과제였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로망일 뿐이었다. 

이민과는 거리가 먼 K - 현실의 흐름따라 쓸려가던 중, 남편에게 뜻밖의 제안이 찾아왔다.

우리의 갈망을 익히 잘 알고 있는, 해외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오랜 친구였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데 이곳에 와서 함께 하지 않겠냐고.


가능성을 인지한 남편은 빠르게 결단했다. 

'인생 후반전을 조금 일찍 시작하자'는 생각에 이르니, 나역시 한국 생활은 과감히 정리가 되었다. 



헝가리.

마침내 부다페스트.

영어를 사랑하던 끝에, 결국은 이렇게.



영어가 그랬 듯,  이 무시무시한 헝가리어는 과거의 나를 넘어, 미래의 나로 데려가겠지.

헝가리어를 공부하며 되살아난 첫사랑의 전율.

원어민의 언어를 배운다는 즐거움에 헝가리어의 고질라급 어려움을 설렘으로 받아들이다니, 이제는 눈 먼 사랑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금세 흐지부지되고마는 금사빠는 아니기를.

울고불고 헤어진다 말은 하더라도 다시 사랑하기를. 

고백하자면, 

고질라에게서...부디.. 살아남아 주기를...










"EZ AZ!!!"는 헝가리어로 "바로 이거야!!!" 또는 **"이거야!!!"**라는 뜻입니다.

상황

이 표현은 보통 무언가를 찾거나 이해했을 때, 

또는 어떤 해결책이나 정답을 발견했을 때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오래 찾던 물건을 발견했을 때나, 

문제의 해답을 찾았을 때, 

혹은 자신이 정확히 원하는 것을 만났을 때 이렇게 외칠 수 있습니다. 

강한 확신이나 만족감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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