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우주 여행기
곧 휴가철이 다가오니 작년에 다녀온 몽골 여행기를 풀어볼까 한다. 관광 정보는 거의 없지만 몽골에 대한 일반적인 편견을 조금 깰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자아, 같이 가볼까!
어두운 밤, 차를 타고 도시를 지날 때면 나는 우주 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캄캄한 밤 멀리서 반짝이는 가로등 불빛들이 별빛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가로등 아래서 사랑을 고백하고 있을 수도, 또 누군가는 하루내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으리라. 미지의 누군가가 시간과 일상을 보내고 있는 곳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새롭다. 그래서 나는 저녁 무렵에 만나는 낯선 지역을 ‘소우주’라 부르기를 좋아한다.
비행기 창 너머로 조금씩 보이던 몽골의 첫인상도 그랬다. 잘 모르는 미지의 세계. 그나마 아는 거라고는 과거부터 엉덩이 께에 있었다던 푸른 반점이 이 나라에서 왔다는 것 뿐. 띄엄띄엄 밝혀진 가로등이 유난히 별 같아 보이던 밤이었다. 2017년 어느 여름날, 그렇게 우주를 날아 몽골 징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운전자 겸 가이드 역할을 하게 될 몽골인은 웃는 표정이 선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 시절을 한국에서 보낸 터라 한국말을 매우 유창하게 했으며, 특히나 욕은 훨씬 찰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숙소로 가는 동안 그는 한국처럼 몽골에서도 국민들의 기대를 받는 한 대통령이 새로 선출됐노라며 이 도시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인지를 한동안 이야기했다.
나는 의외로 화려한 도심을 보며 조금 당황했고, 변화에 대해 찬양하는 몽골인을 보며 한 번 더 당황했다. 흔히 알려진 몽골의 모습, 그러니까 이를테면 푸른 초원 위에 말이 뛰어다니는 그런 풍경은 관광으로나 즐긴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그는 내일부터 ‘초원’에 머물 것이라며, 오늘은 푹 자두라고 했다. 그제야 피곤함이 가득 몰려왔지만 눈이 잘 감기지 않았다. 처음부터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몽골 여행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 탓이었다. 옆에 놓인 몽골 맥주, 생구르를 한 모금 마셨다. 이내 눈앞이 핑 돌았다. 나는, 소우주에 도착했다.
여행 둘째 날, 도심을 벗어나니 까만 점들과 하얀 점들로 보이는 양 떼와 염소 떼가 보였다. 새파란 하늘과 초록빛 초원. 띄엄 띄엄 들어선 게르와 말 무리. 나무가 자라지 않는 크고 작은 언덕들.... 광활하고 단조로운 공간을 차로 빠르게, 그러나 한참 달렸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이 오면 잠이 오는 대로, 생각이 나면 생각 나는 대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하늘과 땅 사이의 넓은 공간을 바람과 이야기와 생각들이 밀려와 채웠다.
이동 시간이 길어지자 가이드에게 물었다. 몽골 사람들은 징기스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라는 답이 들렸다. 그는 징기스칸이 사람을 잘 썼다고 평가했다. 용맹하고 배신하지 않는 인재가 주변에 많았고, 이를 적절히 활용했다는 것이다. 가이드는 ‘어떻게 징기스칸이 그 어려운 일을 했는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몽골 자연이 선사하는 특유의 너그러움이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광활한 대지 위 너그럽고 여유로운 칸의 모습. 부하들은 그 모습을 보고 이 분에게 평생을 바치겠노라, 결심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몽골 불교의 초기 사원에 도착했다. 중국과 소련의 통치 아래 폐쇄도 됐다가 박물관도 됐다가 했던 곳이었다. 사원 내부에는 불상들이 많았다. 사원이 폐쇄될 무렵 인근 주민들이 혹여 소실될까 소중히 간직했던 것들이었다. 우리 일행이 도착했을 때는 아마도 장례식인 듯 한 의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던 날 다시 제자리를 찾은 불상 이야기를 들으며 동그란 원을 생각했다. 우리는 눈 앞에서 끝나고, 사라지는 것에 크게 아쉬워하지만 그 때 누군가는 제자리를 찾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한다. 물론 이런 자각을 한다고 하여 떠남이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 마음을 편안히 하는 일은 짊어진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가능하겠구나, 생각했다.
몽골에서는 낙타를 타면 하늘과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낙타의 키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커 봤자 얼마나 크겠냐 싶었는데 실제로 낙타를 보면 약간 압도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위에 올라타자마자 ‘아 이건 진짜 하늘 바로 밑까지 가는 거구나’ 생각이 든다. 평소 고소공포증이 없는 편인데도 아찔한 기분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결국 체험 중간에 내려달라고 했다. 낙타를 끌어주던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체험을 하고 싶느냐'는 몸짓이 보였다. '아냐, 난 이미 '매우' 충분해요' 라고 답했다. 낙타의 물렁한 혹이 꺾이지 않도록 살짝 잡고 있는 상황에서 엉덩이로 겨우 균형을 잡았던 그 때..!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손에 땀이 나고 발바닥이 간지럽다.
그러고 보면 이 나라에서는 물리적 거리가 통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가 많다. 하루는 일행과 바로 앞에 보이는 언덕까지 산책 겸 다녀올까, 하고 걷다가 도저히 산과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포기한 적도 있다. 밤하늘은 또 다르다. 마치 당장이라도 별이 내려올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물리적 거리를 무력화하는 자연을 보고 있자면, 곧 이를 즐기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저 감각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는 거기 있구나. 나는 여기 있다.’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몽골에서의 밤하늘은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었다. 몽골에 머무는 동안은 뒷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또는 팔뚝이 조금 쌀쌀해질 때까지 언제고 하늘을 봤다. 미니 모래 사막에 발을 묻었던 밤, 아예 의자를 가지고 나와있었던 밤, 별똥별도 봤던 그 밤들은 하루 같기도, 또 며칠에 걸친 경험 같기도 했다. 그렇게 까무룩 이틀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보냈다. 전통 복장을 입고 매미처럼 소리를 내는 그 공연이 자꾸 마음에 걸렸는데, 관광객을 위해 공연자들이 억지로 웃고 있지는 않는지 조바심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무대에 오르려고 공연자들은 따로 관련 대학을 나오고 수련을 한다는 말을 듣자 조금 안심이 됐다. 자부심에 찬 그들의 공연은 장인의 솜씨처럼 훌륭했다. 우리 일행은 왠만한 한국의 지역 도시들보다 훨씬 화려한 곳에서 기념품을 샀고 도심을 조금 더 돌아다녔다. 사람들은 한껏 옷을 차려입고 외식을 즐겼다. 건물은 꽤나 번듯했고 어딜 가나 차가 막혔다. 그동안 봐왔던 자연의 나라와는 또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얀 게르와 초원, 그리고 최신 유행의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과 화려한 거리들.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것들이 몽골에는 함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경험하며 나는 막연했던 소우주를 아주 조금 탐험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하늘, 비행기 창 밖에는 여전히, 별이 반짝이는 우주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