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날 모르는데 네가 날 아네.
MBTI에 늦게 빠진 흔한 30대.
아직도 누가 내게 MBTI가 무엇인지 물으면 폰에 저장된 것을 한 번 확인하고서야 정확히 말해줄 수 있지만 (왜 이렇게 안 외워지는지) 어쨌든 확실히 MBTI에 흥미가 생겼다.
MBTI 관련 글을 볼 때마다 앨범에 저장된 내 유형을 체크하고 다시 돌아가서 내 유형을 찾아보고
'오..? 진짜 나네?' 하는 일이 꽤 있었던 것! 이것이 내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달까?
20대의 나는 매우 명확한 사람이었다.
나는 나를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에 비하면 조금 더 심플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은 더 복잡해진 나를 마주한다. 외향적인 줄로만 알았던 내게 내향적인 모습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걸 좋아하지만 갑작스러운 약속은 좋아하지 않고 집에 갈 때는 혼자 가는 게 편하다.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편이라 나는 감정적인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오히려 남편보다 내가 더 이성적인 사람이라는 사실도 놀라웠다. (나는 T, 남편은 F이다.)
이쯤 되면 나는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 건지 일관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명확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싶은데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나에 대해 어렵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MBTI에서 나의 유형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 복잡한 나를!!!
'너의 유형은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고 정의 내려주니 세상 속이 시원했던 것. 가끔 나도 낯선 내 모습들까지도 이해받는 느낌이라 힐링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의 이 성향은 언제부터였을까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어쩌면 나는 쭉- 이런 사람이었을지도, 이전엔 몰랐던 나를 하나씩 깨우쳐가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적에는 '내가 바라는 나'의 성향을 조금 더 쫓았던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쏠렸던 나의 관심이 나이를 먹으며 나에게 온전히 머무르면서 남의 시선 상관없이 그대로의 진짜 '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MBTI로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다양한 모습들조차 그저 나 자체임을. 내가 나에게 더 귀 기울이면서 알게 된 나의 진짜 모습들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가 마땅히, 기쁘게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아, 나는 ESTJ이다.
염격한 관리자, 엣티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