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우지 않는 것으로 내세워요. 136524 unique.
모두 이름을 내세워요. 크게, 혹은 작게, 눈에 띄게, 아니면 꽤 재치 있게. 어쨌든 바라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건 성공이에요. 간판은 그래서 중요해요. 내세울 것이 있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두게 되니까요. 하지만 이름도 길어서 외우기 힘든 이 헤어 살롱은 간판도 없고 심지어 숨어있어요. 정말이에요. 숨바꼭질하는 술래처럼 이리저리 찾아다녔거든요.
간판이 없는 헤어 살롱을 떠올려봐요. 알릴 필요가 없다기보다는 굳이 이목을 끌 필요가 없는 것이겠죠. 그렇잖아요. 이미 그곳을 알아서 찾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니까. 한 번 와 본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소개를 받은 사람들. 한 번 찾아온 사람은 계속 찾아온다는 것 자체로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그러니까 간판이 있고 없고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화려한 얼굴은 눈속임하기만 좋을 뿐이죠.
136524 unique는 심플해요. 내세우지 않는 것으로 내세워요. 그러면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잘 믿게 되거든요. ‘알아서 잘 찾아오세요.’ 하면 잘 찾아가야죠. 아, 물론. 일주일 전에 예약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하고요.
비밀 초대장을 손에 쥔 것처럼 장소를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를 들여다보면서 이곳을 찾아 왔어요. 홍대 앞 골목 안에 있어요. 삼거리 포차 옆 골목 안으로 끝까지 들어가야 해요. 정문 옆 샛길로 찾아오려면 서교 주차장을 거쳐야 하고요. 아까 말했지만, 간판이 없어요. 여기를 들어가도 되나 싶은 건물로 들어가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찾으면 돼요. 5층 136524 unique. 이렇게 적혀있어요.
공간은 보통 꾸미는 사람의 취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어요.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떤 것을 위한 공간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누구의 공간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철저하게 찾아오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에요. 준비된 음료를 봐주세요. 여기는 카페가 아니지만 누가 찾아오더라도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도록 준비해놨어요.
저는 오늘 머리를 자르러 왔어요. 과일과 탄산수와 오미자차를 준비해주는 미용실은 처음 봤어요. 시술 시간이 길어야 한 시간이니까 금방 자르고 나가는 게 보통이잖아요. 그래서 혼자 오기보다 누구와 함께 찾아오는 것을 추천해요. 나를 기다리는 시간에 적어도 배가 고플 일은 없을 테니까요.
선반 가득한 카메라와 렌즈를 보니 사장님은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136524 unique의 SNS에 들어가 보면 고객의 헤어스타일이 완성되는 순간을 찾아볼 수 있어요.
머리만 자르려고 미용실에 간다고 생각하면 이곳의 비용은 조금 비싸요. 하지만 잠깐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비용이죠.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번쩍번쩍 대리석 바닥도 아니고 트렌디한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도 아니에요. 저는 무엇보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커다란 화분이 좋았어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산하고 나가는 순간까지 저는 아주 잘 짜인 동선을 따라 움직였어요. 훌륭한 연출가의 손길에 따라 연기를 한다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었어요. 허투루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메뉴얼이 잘 갖춰져 있다는 것이겠죠. 서툰 상냥함보다는 모든 것이 의도된 서비스가 사실은 훨씬 친절한 것임을 이번에 잘 알게 되었어요. 어설픈 것은 사람을 불편하게 할 뿐이죠.
무뚝뚝하고 자칫 사무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확실한 태도의 실장님이 결과적으로 편했던 것도 같은 까닭이에요. 저의 스타일과 두상을 파악하고 꼼꼼하게 스타일링 해주는 손길은 무척이나 정성스러웠고 그 결과물은 만족스러웠으니까요. 저는 아주 오랜만에 앞머리를 내렸어요.
더는 미용실에 머리만 자르러 가지 않아요. 이제는 일상을 정리하러 간다는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죠. 두피 마사지로 피로를 함께 푸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편히 앉아서 생각을 다듬는 곳이라고 여길 수도 있죠. 물론, 음료수와 과일도 함께 먹으면서 그냥 시간을 보낼 수도 있어요. 이곳의 유니크함은 미용실에 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욕망을 담아낼 수 있는 프로페셔널함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왜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오고 사람들에게 알아서 추천해주는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곳은 다 준비되어 있어요. 우리는 그저 예약하고 그곳에 갈 시간을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한 줄 평
누구도 상냥하지 않지만,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은 친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