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마스 앤더슨 2.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결코 작은 성취에 만족하는 일이 없고 더 큰 결실과 성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탐욕과 마주한다.
영화 '데어 윌 비 블러드(There will bi Blood)'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탐욕과 집착에 관한, 그리고 그것들만을 좇던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1. 탐욕
다니엘 플레인뷰는 집착과 탐욕의 결정체다.
그는 석유를 찾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닌다. 관련 땅을 매입하기 위해 온갖 달콤한 말로 사람들을 속인다. 함께 다니는 아들 역시도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다. 석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어떤 모욕도 견딘다.
석유를 시추하던 중 아들이 사고로 다치지만 뿜어져 나오는 석유를 보고 다 자기 것이라고 소리 지르고 웃는 장면에서 그의 욕심이 무섭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공이고 재물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극단적인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다니엘 플레인뷰와 영화를 끌고 가는 또 다른 탐욕의 대상이 있다.
목회자인 일라이 선데이다. 그는 다니엘 플레인뷰가 석유 사업을 위해 사들인 농장 주인의 아들이다. 그리고 그 마을 교회를 책임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단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교회를 핑계로 다니엘 플레인뷰에게 돈을 요구하고, 땅을 헐값에 넘긴 아버지에게 폐륜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영화 말미에서 재정상황이 어려워진 일라이는 다니엘 플레인뷰에게 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믿는 신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일라이는 신앙보다는 자본에 눈이 멀어버린 종교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를 끌고 가는 두 명의 인물, 그리고 그들이 각각 대변하는 자본주의와 종교의 모습을 보여주며 타락하고 변질됨을 비판하고 있다.
#2. 가족
영화를 끌고 가는 또 하나의 고리는 가족이다.
데니얼 플레인뷰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누구도 믿지 못한다. 그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은 그의 아들 HW 플레인뷰뿐이다. 물론 아들을 자신의 돈벌이 수단에 이용하기도 하고, 다친 아들을 뒤로하고 일을 나서는 냉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아들을 끔찍이도 아낀다.
어느 날 그에게 자신을 이복동생이라고 소개하는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자신을 헨리 플레인뷰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데니얼의 이복동생임을 증명하는 편지와 사연을 소개한다.
데니얼 플레인뷰는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철석같이 믿는다. 그리고 수십 년을 같이 일한 동료보다 그를 더 신뢰하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평생을 가족의 따뜻함 없이 살아온 데니얼 플레인뷰에게 가족, 혈육은 유일하게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안식처이자 의지할 수 있는 곳이다.
나중에 이복동생이라고 소개한 남자가 진짜 동생이 아님을 알게 된 데니얼 플레인뷰는 오열하고 그를 총으로 쏴 죽인다.
평생을 외롭게 살아온 그에게 가족은 어떻게 보면 돈에 버금갈 정도로 중요한 요소다.
#3. 탐욕과 집착의 끝
결국 데니얼 플레인뷰는 성공한 석유사업가가 된다. 탐욕과 집착, 그리고 끝없는 의심들이 결국 그를 '성공'한 사업가로 만들어줬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거대한 저택을 얻었지만 그를 지켜주는 것은 오직 술뿐이다. 평생 동안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마저 그를 떠나간다.
거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그를 뒤덮고 있는 것은 주위에 가득 찬 허무함뿐이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그와 평생을 얽히며 살아온 일라이가 그를 찾아온다. 또다시 플레인뷰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일라이, 그리고 그를 조롱하는 플레인뷰, 이 둘의 비정상적인 관계는 결국 영화 제목처럼 <there will be blood>, 핏빛으로 끝이 난다.
플레인뷰는 영화에 마지막 'I am finished'(이제 다 끝났다)고 읊조린다.
이제 끝났다는 그의 말은 탐욕의 끝에 결국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음을, 그리고 허무하게 끝이 났음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일라이 선데이와 폴 선데이를 연기한 폴 다노의 연기는 단연 일품이다.
영화 내에서 데니얼 데이 루이스와 비교했을 때도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