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웃라이어 교사 Nov 06. 2021

퇴근 후, 피아노를 배웁니다.

생각들

 나는 퇴근 후 학교 근처에 위치한 음악 학원에 피아노를 배우러 간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 달 정도 다녔던, 집 앞 상가에 있던 피아노 학원에서 있었던 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희미한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보면 딱 한 상황이 기억속에 떠오른다. 그 상황은 내가 오른손으로만 건반을 치다가 왼손으로 반주를 시작하던 첫 날, 너무 어려워서 피아노를 치지 않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멍하니 피아노 악보만 바라보던 것이다. 누나는 그 때 내가 울고 있었다고 했지만 울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피아노 학원을 그만 두었다. 엄마는 내가 하기 싫다고 말한 학원을 억지로 다니게 하지 않았다.


 그 후 25년이 지났다. 중간에 피아노를 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교대 재학 중 피아노를 쳐야 하는 음악 과목이 2개 있었고, 교대생들은 미리 정해진 수업을 모두 들어야 졸업할 수 있었기 때문에 2번의 피아노 수업은 절대 피할 수 없었다.


 2번의 피아노 수업 시간에 나는 피아노 곡을 배우고 익혀서 피아노를 치기 보다는 매 수업에서 다루는 곡의 음표 위에 음이름을 모두 쓴 뒤 음이름과 건반을 번갈아 보며 외우고, 리듬을 알기 위해 해당 곡의 음원을 들으며 연습했다. 학습은 배우고 익히는 것인데, 나는 배우지는 않고 익히기만 햇다.

 공부가 어려운 이유의 대부분은 학습자가 배우기는 열심히 하나 충분히 익히지는 않아서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로 익히기만 열심히 했다. 내가 곡을 연습하는 모습은 피아노를 친다기(play piano) 보다는 흡사 리듬게임을 하는 것(play rhythm game)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그러나 모로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둘 다 play지 않은가?^^) 눈이 침침해질때까지 계속 근성을 가지고 연습하다 보면 결국에는 건반이 외워져서 실기 평가 때에는 나름대로 곡을 멋드러지게 연주하기도 하였다.

 아마 내가 천재라면 이러한 방식 즉, 단순히 익히기만 해도 즉, 피아노 곡에 대한 귀납적 접근(?)만으로도 피아노 실력이 점점 늘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점점 곡의 길이가 길어지고 요구하는 기교가 높아질수록 필요한 연습시간은 체증했고 결국 마지막에는 한 줄(4마디)을 하루 종일 연습해도 턱없이 모자란 지경에 이르렀다.

작가의 이전글 자기 소개 시간에 든 생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