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 아동을 위한 장애 인식 교육의 필요성
나의 엄마는 정년을 앞둔 초등학교 선생님이다. 최근에 절망스러운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최근의 초등학교 시험은 '평가'에 초점을 두지 않고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아이들은 해당 단원을 습득할 때까지 - 즉, 생활통지표에 '매우 잘함'이 뜰 때까지- 시험을 반복하여 본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아이들이 (일상이진 않지만) 재시험-재재시험을 본다. 즉, 적어도 초등학교는 시험이 아이들에게 성적과 순위를 매기는 수단이 아니라는 얘기다.
퇴임을 앞둔 엄마는 교과목 담임 선생님인데, 엄마가 가르치는 한 반에 자폐 아동 하나가 있다고 했다. 엄마 또한 우리 아이로 인해 할머니로서 마음 고생을 상당히 해왔던 지라 자폐 아동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그 날은 단원 평가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15분 간 아이들에게 단원 리뷰를 마치고 시험지를 나눠줬다. 시험지를 나눠 주고 아이들이 열심히 풀어내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데 교실 내 복도를 한 바퀴 돌고 왔음에도 자폐 아이는 문제를 쳐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손에 화이트 테이프를 붙이고 있더란다.
"00아, 한번 풀어봐."
"저는 못해요. 어려워요."
반 아이들이 거의 다 풀었을 시점, 한 바퀴 더 돌고 왔는데도 아이는 손에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선생님(엄마)은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만큼 큰 소리로 아이에게 문제를 설명해주었다.
"00아, 이건 전선이 하나로 연결되었을 때 불이 켜질 땐 무엇이라고 부르는 지, 전선이 두개로 연결 되었을 때 불이 켜지는 건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를 묻는 문제야. 선생님이 아까 알려줘서 00이도 알 수 있는 문제야."
시험이 끝났다. 한 아이가 아주 큰 소리로 항의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왜 쟤만 알려줘요? 이거 교육청에 신고할거에요!
추가적인 설명이 힌트가 될 것이 화가 났던 것일까? 그 자리에 없던 나는 납득이 어렵지만 아이는 크게 화를 냈고 선생님은 이 아이를 남겨 잘못된 언행에 대해 훈육했다.
그 다음날, 선생님은 뜻밖의 항의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를 건 이는 혼난 아이의 엄마였는데 아이가 집에 와서 울었다는 것이었다. 훈육의 내용은 옳으나 아이가 겁을 먹을 만큼 아이를 따로 남겨 훈육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 항의의 요지였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저희 아이가 공정과 정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여서요. 불의를 못참거든요.
엄마는 30년 간 교육자로서 회의를 느낀다고 했다. 10년 간 소셜섹터에 있었던 나도 회의감이 느껴졌다.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는 무엇인가. 일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정도의 경증 자폐 아동이 배울 수 있는 환경과 의지를 제공하는 것이 공정과 정의를 해하는 것인가?
또 다른 이야기
지인의 시누이는 다운증후군 아이를 키우고 있다. 8살이 된 이 아이는 특수반이 있는 일반 초등학교에 진학하여 비장애 아동과 함께 수업을 듣는다. 문제는 부모 참관 수업 날이었다. 아이의 부모에게는 '000의 부모님' 이란 명찰이 이 전날 전달됐다. 가끔 돌발 행동을 할 수 있는 아이를 이해해주는 반 아이들과 그 부모님들이 고마웠기에 이 엄마는 밤새 브라우니를 구워 예쁜 쪽지와 함께 개별 포장해 들고 갔다. 왼쪽 가슴에는 전날 받은 명찰을 고이 달고.
불안과 설렘을 가지고 간 반에는 아이가 없었다. 아이는 특수반에 내려갔다, 참관 수업이 보고 싶으면 특수반으로 내려가라고 전했다. 엄마는 가슴이 미어졌다. 얌전히 수업을 듣는 같은 반 아이들 부모님께 마치 이게 일상적인 교실의 풍경인 양 거짓말 하는 것 같아 죄송했다고 했다.
이 엄마는 교장 선생님께 문제 제기를 하려고 했다. 앳된 담임 선생님은 정말 정말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를 했다. 엄마는 문제 제기를 접었다.
자폐 아이들도 공부할 수 있다. 공부 해야 한다.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선택지를 가진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공부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공부할 수 있을까? 장애를 가진 이들은 숨겨지고 배려 받지 못한다. 우리나라 인구의 5%가 장애인이라는데, 일상적으로 길거리에서 하루에 마주치는 장애인 숫자가 1명도 안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마음 아프고 하루 눈물 짓고 끝날 일이 아니다. 자폐 아이를 둔 누군가는 오늘도 자살을 하고, 누군가는 아이를 시설에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이 가슴 아픈 일들이 매일 매일 반복된다.
나는 비장애아동을 둔 아이 엄마로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위에서 나열한 문제들이 비장애 인구의 장애 인식 교육의 부재에서 온다고 봤다. 어른의 잘못된 대처가 쌓여 아이들도 같은 어른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도 어릴 때부터 배운 고리를 이어 나가고 있을 뿐이다. 당장 나부터 장애인을 어떻게 대해야 옳은지, 인간 대 인간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만약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는 법을 배운다면 어떨까.
현재 국내의 장애 인식 교육은 의무 이수 시간을 채우기 위한 학술적인 정의 강의가 주를 이룬다. 유치원 아동 대상 장애 교육은 1회성의 인형극 혹은 온라인 동영상 자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쉽다. 더 다른 대안이 있었으면한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풀 수 있을지 매일 읽고, 매일 고민한다. 같은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 누구나 존중 받는 사회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