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를 부탁해_25
“왜 돼지를 키우는 거에요?” ‘진짜' 돼지를 키우는 후계자 J가 물었다. 그는 집안의 양돈 사업을 이어 받아 8천 마리의 돼지를 키우고 있다. “재밌을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모든 상황을 함축하면서도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말을 하고 싶었다. 후계자J의 양미간이 꿈틀 했다. 그는 더이상 묻지 않았다. 그이후로 대화는 없었다. 이 사람 참 재밌게 사네...라고 생각했을리는 없겠지. 아마도 동물 키우는 일을 쉽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한편으론 모욕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365일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농촌은 이제 마을은 사라지고 농업만 남았다. 산업형 농사만이 ‘진짜’ 농사가 되었다. 빚은 늘었고, 지역 문화는 단조로워졌다. 공동체가 사라진 이곳은 노인과 피해의식만이 숨을 쉬었다. 자본은 이들을 먹고 살았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집어삼켰다. 숨 쉬는 공기, 마실 물, 마지막 남은 풍경마저 인출해내었다. 가난한 농촌의 젊은이들은 서울로 향했다.
축산인만 비난할 수는 없었다. 고향을 떠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농촌에 남아있는 후계 농부 대부분이 축산을 하는 이유가 있다. 그들이라고 동물에 매여 사는 삶을 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가가 버린’ 농업에서 유일하게 돈 되는 농사가 축산업이다.
그렇다고 스스로를 무죄라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마을은 승자와 패자로 나뉘었다. 소수는 풍요로워졌을 수도 있지만, 다수의 삶은 척박해졌다. 똥냄새와 파리 떼옆에 살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빈집이 생기고 마을은 쇄락했다. 물은 오염되었고, 풍경은 천박해졌다. 사실 축산인 본인이 제일 큰 피해자일 것이다. 주말 없는 생활, 대출에서 대출로 이어지는 생활. 돈사 옆을 지나가면, 아비규환의 돼지 비명이 들려온다. 그건 지옥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 모습을 매일 보며 살아야 하는 삶,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낄 측은함을 외면하며 살아야 하는 삶. 영혼 없는 삶을 짊어지고 사는 삶. 그것을 누구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고라니 S가 만들어온 함박스테이크를 보며 감탄하던 때에 후계자 J와 마주쳤다. 내 손에 들려있는 스테이크를 보며 그가 말했다. “함박스테이크를 보면 그 소 생각이 나서 못 먹겠더라고요"
후계자 J는 고라니S의 젖소 목장 일을 돕고 있었다. 새벽 5시와 오후5시, 12시간 간격으로 하루 2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소를 돌보았다. 그런 그가 젖소에게 불쌍함을 느낀다니, 조금은 충격을 받았다. 축산인은 어떨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내 자신이 드러났다.
정말 문제는 모두가 패자라는 것이다. ‘진짜’ 돈을 버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축산인과 주민의 대립만 부각될 뿐이다.
2020년, 한국의 이슈는 최장 기간의 장마와 코로나19였다. 둘다 생태계와의 관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이유로 생겨났다. 지구가 더 뜨거워질 것에는 이견이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이하느냐 차악을 맞이하느냐만 선택할 수 있을 뿐이란다. 기후변화는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측 불가능한 가뭄, 냉해, 집중호우, 태풍 등에 세계 곡물 가격은 급등을 반복했다. 기후변화는 질병도 더 빈번하게 발생하게 한단다. 질병의 주 매개체인 모기가 더 넓은 지역에서 더 오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종種을 지켜야 한다. 유일한 방법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
현재의 축산업은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만들어냈다. 이를 뒷받침한 힘은 석유다. 인류는 유래 없는 양의 축산물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자연에 거짓은 없다. 많이 얻으려면, 많이 써야 한다. 인류는 기적을 이룬 것이 아니라, 내일의 열매를 미리 가져왔을 뿐이었다. 축산업은 사료 회사, 의약회사, 가공식품회사 등과 얽힌 거대한 산업이다. 업계는 값싼 식품이 빈곤을 없앨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빈곤은 늘어났다. 업계는 비용의 많은 부분을 사회에 전가했다. 탄소 배출로, 지표수 사용으로, 지하수 오염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보건 비용으로, 사회는 비싼 값을 치르고 있다. 하지만 잔치는 끝났다.
축산업의 온실가스 기여도는 최소 18%에서 최대 51%까지다. 탄소세는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받아들이는 의견이다.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이상적인 정책은 환경 오염에 가격을 붙이는 것이다. 탄소세가 제대로 매겨질 경우, 축산물의 가격이 지금과 같을까. 뚜껑을 열어보면 알 일이다. 파국이 먼저 오지 않길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