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해외 발령 통보, 겁 없이 바로 “YES”라고 답하다
“슈엔님, 잠깐 통화 괜찮아요?”
식곤증이 찾아오던 어느 평일 오후 3시경, 회의실에서 한창 2분기 전략 자료를 만들고 있을 때 인사팀에서 팀즈를 보내왔다.
보통 인사팀에서 연락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보니, 설렘반 걱정반으로 “네 지금 가능합니다”라고 답했고 1분도 안 돼서 바로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다.
언어 성적에 대한 질문이었다. 중국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에 중국어 성적은 높게 입력되어 있었으나 영어는 고만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영어 성적’에 대한 질문들이 많았다.
속으로는 ‘갑자기 왜 언어 성적에 대해서 궁금해할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매일 전화영어도 하고 있고 매년 오픽 시험도 보면서 실력을 늘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어필(?) 아닌 어필을 했고, 인사팀은 일단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현재 부서에서 일한 지 3년 차가 되는 해, Professional 승진을 했던 터라 어딘가로 발령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주재원’이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못했다. 아니 기대 자체를 안 했었다.
왜냐면 매년 PMDS 면담을 할 때마다 ‘너는 CDP를 어떻게 그리고 있니‘라는 팀장님들의 질문에 ‘글로벌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어필했으나 아무런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주재원에 도전하기에는 나이가 걱정이었다. 이제 내 나이면 결혼해서 가정도 꾸려야 하고 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집 구매, 투자 등)을 마련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차가 늘어날수록 글로벌 근무에 대한 꿈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리고 그 시기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이것저것 알아보고 있었던 시기였다.
인사 담당자의 연락을 받고 난지 2주가 지났다. 열심히 일하고 있을 오후 2시경, 팀즈로 연락이 왔다. 이때는 나도 모르게 ’어디론가 발령이 나겠구나‘라는 짐작을 했다. 그런데 보통은 팀장님을 통해 발령 통보를 받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프로세스였다. 인사팀이 나에게 먼저 연락을 준 것이다.
설레면서도 걱정되는 마음으로 사내 카페에 갔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했지만 속으로는 살짝 긴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제안을 하면 어쩌지? 인사 발령이 아니라 다른 일 때문인가? 내가 인사적으로 잘못한 게 있었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하면서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었다. 마시던 커피도 뱉을 뻔했다. 그동안 ’글로벌 경험 해보고 싶어요!‘라고 손 들었을 땐 아무런 기회가 없었는데, 주재원에 대한 희망을 점점 내려놓고 다른 기회를 찾던 도중 내게 들어온 제안이었다.
심지어, 만약 주재원을 나가게 된다면 중국 유학 경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 보내겠거니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호주라니!
발령 통보를 듣자마자 네? 네! 네? 진짜요?라고 한 10번은 물어봤던 것 같다. 그리고 급습해 온 한 가지의 걱정. ‘아, 나 영어 잘 못하는데-’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자신감이 넘쳤다. 뭐든지 다 도전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새로운 도전에 갈망하고 목말라하던 시기였는데, 또 다른 목표와 꿈이 생기니까 갑자기 막혀 있던 피가 도는 느낌이었다. 심박수가 올라갔다. 이건 분명 내가 나에게 보내는 “YES” 시그널이었다. 그리고 고민해 보겠다는 네고(?) 없이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네, 갈게요. 도전해 볼래요. 가서 좋은 성과 만들어 보겠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동기, 선후배, 주변 지인들과 다양한 식사 자리를 가졌다. 모두들 발령 통보 과정을 궁금해했다.
해외로 나가겠다는 결심을 잠깐의 고민 없이 어떻게 그 자리에서 바로 할 수 있었는지, 한국 생활을 다 내려놓고 해외로 가서 몇 년을 있어야 하는 건데 결정을 너무 쉽게 한 것 아니었는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받았다.
사실 이러한 질문들을 듣기 전까지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오직 호주에 가서 글로벌 경험을 쌓고 좋은 성과를 만들어 내고 싶다는 것, 다양한 도전들을 해볼 수 있다는 생각에 그저 신나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발령 통보받은 순간들을 복기했을 때, 나도 나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겁도 없이 어떻게 그런 결정을, 가족들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날 그 자리에서 YES를 외치지 않았다면, 고민할 시간을 조금만 달라고 했다면, 아마 두려움과 걱정이 앞서서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 명언을 참 좋아한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선택을 하고 있다.
출근길 어떤 옷을 입을지, 카페에서 어떤 메뉴를 고를지, 이번 주는 친구를 만날지 혹은 혼자서 시간을 보낼지, 자기 계발서를 읽을지 혹은 에세이를 읽을지, 주식 투자를 할지 혹은 부동산 투자를 할지, 이직을 할지 아니면 대학원을 갈지 등.
그 당시의 나는 글로벌 경험을 선택했고, 23년 4월 22일 토요일 저녁 6시 55분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고 호주 시드니로 향했다.
발령 통보받은 지 3주 만에, 내 삶의 환경과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직장인 7년 차에 그렇게 주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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