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먹자 치앙마이:프롤로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아는 사람들은 안다. 가족과의 여행이 어떤 것인가를.
9년 차 부부인 우리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늘 다음 여행지를 정하는 남편 로건을 둔 덕에 여기저기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하지만 제이가 태어난 뒤론, 사실상 가족여행이 되어버린 우리의 여행은 늘 휴양지, 바닷가, 호텔 등을 전전하면서 ctrl+c, ctrl+v 복붙 여행이 진행되었고, 자연도 물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냥저냥인 여행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복에 겨운 소리다.)
청소해 주지, 밥해주지, 나갔다 들어오면 뿅 하고 깨끗해져 있는 호텔은 삶의 만족감을 상승시켰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가족과의 여행은 주부의 확장판이라고 할까. 어차피 나의 역할은 정해져 있으니까.
아이가 어릴 때는 1회용 분유통에 간식, 갖가지 이유식까지 아등바등 챙겨 다녔다. 유모차에 아기띠에 그래도 집에 있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엄마였다.
자유롭게 미술관이나 새로운 문화, 예술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밤만 되면 떼를 쓰고 우는 아이 덕에 언감생심이었다. 날이 지기가 무섭게 숙소로 돌아와 여기가 한국인지 여행지인지 알 수 없는 고단한 하루가 지나고 나면 맥주 한잔.
그나마 일정 시간 서로의 자유시간을 보장해주는 성격 탓에 여행에서 하루 이틀 정도는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었다. 걷고, 미술관에 가고, 커피를 마시고, 프리마켓을 구경하고... 한 번도 배신하지 않은 나만의 소확행을 실천하며 느릿느릿 걸었다. 그 시간이 없었다면 다시 여행을 떠나지 않았겠지.
이번에 로건이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제안했을 때도 내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9년 근속으로 안식휴가가 나온 로건, 유치원을 보이콧하고 몇 달 동안 나랑 1+1로 붙어 다니는 제이, 그 덕에 하던 일을 줄이고 재택으로 근근이 일하고 있는 나에게 가지 못할 이유는 크게 없었다.
그래 가지 뭐.
결재가 떨어지자 무섭게 로건은 치앙마이 정보수집에 들어갔다. 모든 블로그, 카페, 유튜브를 섭렵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가기도 전에 지긋지긋해질 거 같은데 말이다.
어디론가 떠날 때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이 주는 새로움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어서이다. 그래서 늘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야 가이드북을 펼친다. 그리고 첫째 날 정도의 계획을 세우고는 덮어버린다. 그다음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진행되니까.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한 달 간의 우리 여행은 과연 순탄하게 흘러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