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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Nov 29. 2019

무계획이 계획

 [놀먹자 치앙마이:모로 1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나는 이른바 '느낌 주의자' 쉽게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다.


지독한 길치에 심각한 명사 기억장애, 게다가 고소공포증, 폐소 공포증, 비행기 공포증, 뾰족 바늘 공포증 등등 세상의 온갖 예민함은 다 가지고 있는 종자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다. 우스개 소리로 전쟁이 나도 살아남을 거라고, 아무 곳에 가도 누구랑도 말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에도 적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짜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지만 다행히도 천부적인 듣는 능력을 가졌다. 뭐라고 뭐라고 언어는 몰라도 손짓, 발짓, 눈짓 뉘앙스로 대화를 알아차리는 능력은 탁월하다. 게다가 영어 문법이 뒤죽박죽임에도 절대 말할 때 굴하지 않는다. 참 이상한 성격이다.


치앙마이 가기 전, 밀려오는 수많은 일들에 정신 못 차리면서 바빴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이거는 여행을 가는 건가 아닌가 의심되는 상태로 그로기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만 비행공포증이 있기 때문에 정신과에서 약을 한 아름 처방받아 들고 탄 상태였다.


정신없이 치앙마이에 발을 내딛는 순간, 이곳이 좋아졌다. 역시 좋아하는 것이 명확한 탓이다. 적절한 날씨, 온도, 습도도 좋고 로건이 한 달이 넘게 치앙마이의 모든 숙소를 검색하고 난 후 선택한 이 콘도도 마음에 들었다.


사실, 숙소를 정하기 전 한국에서 로건과 나는 길고 긴 공방을 펼쳐왔다. 나는 이왕 한 달 사는 김에 님만해민 근처의 완전 번화가의 작고 예쁜 정원이 딸린 주택에서 살고 싶었고, 로건은 깨끗하고 안락한 그리고 수영장이 있는 콘도를 원했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제이의 몫. 바다도 없는 치앙마이에서 수영장까지 없으면 물을 좋아하는 제이가 할 게 마땅치 않아 보였고, 결국 콘도 당첨!



치앙마이 대학교 근처의 깨끗한 콘도(니바스 치앙마이 아파트먼트)에 도착하자 나는 좋았다. 호텔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새 가구 보다도 청소 상태라고 생각하는데, 온통 하얗고 나무로 깔끔하게 설계된 집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침구는 푹신했고 거기다가 일주일에 한 번 씩 대청소도 해준다지 않나.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3일에 한 번은 수건도 싹 갈아준다. (처음엔 그걸 모르고 수건을 야금야금 아껴 썼더랬다.)



완벽한 우리 숙소는 시내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지만 걸어서 슈퍼나 커피숍, 작은 밥집 등 없는 것이 없었다. 나는 소소한 거리를 좋아한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그다지 근사한 곳이 아니라도 있을 것은 다 있는 그런 곳, 로건이 결혼 9년 만에 내 스타일을 완전히 알았구나, 기분이 좋아졌다.


내일 할 일이 하나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는다는 것. 그리고 서로의 시간을 보장하며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보는 것.


첫날 제이와 로건은 수영장엘 가고 나는 침대에 혼자 누워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유튜브를 시청했다.


행복하다.



모로의 픽 

이케아 리사이클링 백팩 (400바트 / 16000)


치앙마이 대학교 야시장에서 구매한 리사이클링 가방. 이케아 장바구니로 디테일하게 만들어냈다. 15인치 노트북이 들어가서 대만족! (아주 따악-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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