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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로 Dec 10. 2019

7살과 36살의 공책 대첩

[놀먹자 치앙마이:제이 3편] 3인 가족 치앙마이 한 달 살기

즉흥적인 느낌주의자 모로, 철저한 계획주의자 로건, 싫고 좋음이 명확한 7살 제이, 치앙마이에서 한 달 동안 놀고 먹고 잡니다. 셋이 각자 다른 시선으로 한 달을 기록합니다. 제이 3편은 모로가 씁니다.


나는 맨날 싸운다. 엉망진창 치고받고 뒹굴거리면서! 로건이랑? 아니다. 제이랑 말이다.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둘이서 붙어 지낸 지 어언 3개월째. 서로 너무너무 사랑해서 한시도 떨어질 수 없는 우리는 너무 붙어 있어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1+1로 어딜 가든 달고 다녀야 하는 꼬맹이 녀석. 그래도 엄마랑 집에 있는 게 너무 좋단다. 원래는 내가 어른(?)이라 아이에게 맞춰줬는데 가면 갈수록 이 아이에게도 인생의 쓴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나이. 좌절이 없는 삶. 딸 2, 아들 1 사이에서 피 터지게 음식 전쟁을 하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제이에게 주어진 이런 풍족(?)한 생활이 내심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양가 통틀어 외동인 절대 권력자임에 동시에 허용적인 엄마, 회피적인 아빠 탓에 모든 걸 누리고 있는 제이는 카페에 가면 가장 비싼 메뉴를 시키는 탐욕자다. (사실 커피보다 주스나 디저트가 더 비싸지 않나.)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원래도 그러했지만, 더욱더 그러하기로! 싫으면 싫은 대로 화나면 화나는 대로 애랑 치고받고 싸우기로. 지도 인생의 쓴맛을 느껴보라지.


웬만하면 그냥 넘어가지만 무시무시하게 떼를 쓸 때는 나도 참지 않는데, 똑같이 복수하고 절교한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꼭 한 번은 울고 불고 절교하고 다시 화해를 반복하는 우리 둘.


이 날도 그러했다. 나가려는데 오늘도 역시 나가지 않으려는 제이. 급기야 엄마의 공책을 냅다 던지는 게 아닌가. 이놈의 자식이!!! 화가 난 나는 절교를 선언했고, 제이도 다시는 나랑 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공책을 주워오면 화해를 받아준다고 했는데, 제이는 절대로 공책을 줍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럼 뭐 그러라지. 방문을 닫고 혼자 나와버렸다. 방 안에서 제이가 뭐라 뭐라 울고 불지만 그냥 거실에서 빈둥빈둥 티브이나 보고 있으려니 잠잠해진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슬며시 불러본다.


"병아리, 일로 와봐"


'우다다 다다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내 품으로 달려오는 제이.


"엄마 화해해요."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티키타카 이야기를 나누면서, 두 손을 꼭 잡고 예술인 마을에(반캉왓)에 놀러 갔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제이는 이야기했다.


"괜히 공책 던졌네. 이렇게 맛있는데 말이야."


소중한 공책
엄마랑 안 놀아
다시 놀아볼까
병아리 일로 와봐
엄마 화해해요
괜히 공책 던졌네. 이렇게 맛있는데 말이야

제이의 픽

과학책 (450바트, 18000원)


러스틱 마켓 헌책방 가게에서 제이가 고른 책이다. 다양한 과학에 대한 이론서며, 무려 영어로 되어있다. 벽돌만큼 무거워서 사지 말자고 했는데 꼭 사겠다고 해서 들고 왔다. 매일 아침 제이의 일과는 이 과학책을 열어보며 시작된다. 이해는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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