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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oise Feb 22. 2024

복직 후 첫 출근, '미친X' 만난 썰

빌런 중 상 빌런은 이중주차 사이드 브레이크 빌런

다소 과격한 제목이지만 실제로 나는 복직 후 첫 출근에서 도른자...즉 미친X를 봤다.

미친X조차 내 극대노에 비하면 너무나 순화된 표현이지만 일단 이정도로만 기록한다.

마침 눈발이 아주 째질째질 내리던 날, 첫 녹화 시간에 맞추어 늦은 오후 방송국에 도착했더니 아뿔사, 자리가 없다. 이중주차구역까지 꽉꽉 들어차 있는데 이를 어쩌지 하며 빙빙 돌다가 겨우 한자리가 났다.

이마저도 주차된 차를 이리 저리 밀고 그 사이로 틈을 만들어 겨우 주차 성공. 하였으나, 내리다가 너무 좁아 다시 시동을 킨 게 두번이다. 결국 배를 최대한 홀쭉하게 만들어 겨우 내렸다. 옛날에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주차선이 너무 좁게 그어져 있다. 심지어 내 양옆엔 스타렉스니 말 다했지. 과거 만삭때까지 이곳에 차를 끌고 왔던 내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껴진 순간이었다. (다만 그때는 출근 시간이 일찍이라 웬만하면 이중주차 구역에 자리가 있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주차를 하고 스튜디오로 갔다. 패널이 마이크를 들고 집에 가 버리는 정도의 작은 해프닝은 있었으나 첫 녹화는 무사히 마쳤다. 녹화가 끝나고 나니 마침 딱 퇴근시간, 나는 퇴근시간의 이곳이 얼마나 아비규환인지 알기에 그냥 사무실 빈자리에서 일을 하고 가기로 했다. 여기서 일이란, 녹화본을 받아 잘라낼 부분을 표시하고, 자막을 넣고, 제목을 다는 것 등을 말한다. 더군다나 나는 일이 있으면 뭐든지 빨리 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 그냥 사무실에서 한시라도 빨리 일처리를 하는게 마음이 편하다. 그렇게 일을 하니 두시간이 훌쩍 지났고, 거진 아홉시가 다돼 주차장으로 갔다. 마침 눈발은 더 굵어져서 아예 우박처럼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도 이중주차된 차들이 수두룩이라니, 내 앞엔 무슨 차가 있으려나 하며 갔더니 웬걸 카니발이다. 하필이면 카니발이라니 욱 하다가도 이곳의 지옥같은 주차를 알기에 이사람도 오죽했겠나 싶다. 힘주고 밀었는데 끄떡도 안한다. 내가 아무리 왜소한 여자라도 약간은 밀리는 느낌이라도 들텐데 왜이러지? 계속 해봐도 안된다. 출산으로 인해 내 몸의 모든 뼈 골밀도가 낮아진 탓인가, 운동을 줄여서 근육량이  없나...?

결국 근처에 어떤 차에 가서 똑똑 문을 두드렸다. 정말 죄송한데 제 힘으로 도저히 안밀려서 도와주실수 있을까요? 그말에 차주가 흔쾌히 나와 함께 눈을 맞으며 차를 밀었다.


"아우, 이거 진짜 안밀리는데요?"

"그쵸? 설마 브레이크를 그냥 걸고 갔나...?"


당황스러웠다. 설마 이중주차를 해놓고 브레이크를 걸어두고 간 것인가? 황급히 후레쉬를 켜고 번호를 찾았는데 웬걸, 번호도 없다. 아니, 이런 미친x를 봤나.


나를 돕던 상대 차주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갈길을 나섰다. 서서히 꺾어 빠져나가는 레이의 사뿐한 몸짓...그 자유로움이 너무나 부러웠다. 벌써 시간은 아홉시 반, 툭 하고 내 인내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나는 그 눈발날리는 주차장에서 고래고함을 질렀다. 뭐 이런 미친x가 다있어?!!! 다급한 마음에 안에 설마 잠든 사람이라도 있는걸까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며 차문을 당겼는데 갑자기 차문이 열린다. 이사람 차 문도 안 잠그고 간 건가. 마침 눈발은 더 거세게 내리고, 여기서 무한정 기다릴 순 없는데. 우리 집은 40키로나 멀리 있고, 택시를 타면 택시비는 5만 원이 넘게 나올것이며, 여기 주차해놓고 가면 내일 또 다시 찾으러 와야 하는 데다가, 주차비는 또 주차비대로 왕창 나올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내가 어느 한 상식 밖의 인간때문에 봐야할 이 모든 피해를 어떻게 해야하나 싶어 극대노로 이어졌다.


이대로 있을 순 없어서 얼른 뛰어가 안내데스크 가드분께 도움을 청했다. 차 번호를 찍어갔으나 직원이 아니라 방문객이라서 번호 조회는 안되었고. 아무래도 오늘 콘서트를 보러온 관객인것 같다는 추정이었다. 콘서트가 몇시에 끝나냐고 하니, 10시라고. 순간 머리가 아찔해서 망연자실하고 있으니 직접 가서 밀어봐주겠다 하셨다. 걸어가는 그 순간 빌었다. 차라리 내가 힘이 없어서 안밀린 거였길, 혹은 그새 카니발이 빠졌길.


눈발을 헤치고 카니발  앞에 다다라 힘껏 밀어주셨으나, 안밀린다. 번호, 다시 찾아봐도 없다. 마침 차창에 눈까지 한껏 쌓였다. 결국 하다하다 안돼 내 바로 옆에 주차된 스타렉스를 보았다. 그쪽 차창도 눈이 가득 쌓여 뭐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나, 다행히 아주 콩알만하게 명함 한장이 붙어있었고 결국 그쪽으로 전화하여 죄송하지만 상황이 이러이러하다며 차를 빼달라고 부탁하였다. 고맙게도 차를 밀어준 가드분이 직접 전화를 걸어주셨다. 감사하게도 굉장히 귀찮았을텐데도 불구, (왜냐 이중주차도 아닌 그저 내 옆에 세운 차였다)금방 나와주신 옆 차주분. 죄송하다고 말하니 아니에요~~하면서 쿨하게 차를 빼주셨다. 결국 그분 덕분에 나는 40여분간의 인고의 시간을 뒤로한 채 집으로 나설 수 있었다.


집에 오는 길에는 눈발이 어쩜 그렇게 심하게 날리던지. 자유로에서 차선이 안보일 정도였다. 오는 내내 신나게 욕을 하며 왔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자랑할 거리는 전혀 아니지만 나는 욕을 아주 찰진 경상도 사투리로 입에 짝짝 달라붙게  내뱉는다. 한동안 이 능력(?)을 잊고 살았는데 간만에 시원하게 욕을 질러댔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요즘 제법 고집이 심하고 뭐가 제대로 안되면 발라당 드러누워보이는 돌쟁이 아들의 성질머리가 누굴 닮았을까 했는데, 아무래도 나를 닮은 것 같다고. 느긋한 남편을 닮아야 하는데 나를 닮아서 큰일났구나.


대체 올해 얼마나 좋은 일이 있으려고 이런 일을 다 겪나. 이렇게 마음을 다독여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열받는건 어쩔 수 없다. 제발, 이중주차를 할거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지 말아달라.... 이 기본적인 것까지 호소해야 되는 건지.  아마 그 카니발 차주는, 예상대로라면 아주 즐겁게 코미디 콘서트를 즐기고 차에 타서 룰루랄라 집으로  갔을 것 같은데 말이다. 찰지게 욕을 써서 포스트잇이라도 붙여둘까 하다가 참고 집에 와버렸으니 그 차주는 정녕 알 턱이 없겠지.


글을 쓰다가 문득 이런 빌런이 많은지 궁금해서 검색해봤더니 이런 기사가 나온다.


서울 시내 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직장인 성모(35)씨는 최근 출근길에 출차 문제로 애를 태웠다. 부족한 공간에 이중 주차한 다른 차량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둔 바람에 차량을 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 차량에 남겨진 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돌아온 건 “차를 두고 다른 곳으로 나와서 저녁까지 뺄 수가 없다”는 황당한 답변뿐이었다. 성씨는 결국 대중교통으로 부랴부랴 출근했지만 회사에 지각했다. 그는 “이중 주차하고 자리를 뜰 거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두든지 안쪽 차량에 출차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게 당연한 상식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출처: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781046635638440&mediaCodeNo=257&OutLnkChk=Y(23년 6월 기사)

이건 가히 나보다 더한 미친 빌런을 만났구나 싶다.

문제는 이게 해결법도 없다는 것. 같은 기사를 좀 더 읽어보면

경찰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을 적용받는 일반 도로에 이중 주차된 경우에는 경찰 또는 지자체장 등이 해당 차량 소유주에게 이동을 명령할 수 있다.
다만, 건물 내외부 주차장과 골목길 등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아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단속이나 견인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진입로를 막고 연락을 받지 않거나 개인 사정으로 이동을 거부하는 등 막무가내식으로 나오면 사실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

이런 내용이 나온다. 결국 손을 쓸 수 없다라... 이런 상식 밖의 도른자들은 안만나는게 상책이겠으나, 만나면 허파는 뒤집어지고 손 쓸 방도는 없다는 말씀! 끽해봐야 내 마음속으로 저주를 거는 것 그게 다다. 제발, 이런 빌런은 한번 마주한 걸로 족하다. 지독히 눈내리던 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고 이중주차한 카니발 덕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버리다니. 부디 나의 원한이 카니발 차주의 꿈속에서라도 전달되길, 간곡히 비나이다.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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