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로잔의 로컬 카페들
스위스에도 우리나라만큼이나 많은 카페가 있다. 커피와 디저트류를 주로 파는 카페도 있고,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커피나 음료를 함께 판매하기도 하고, 디저트와 식사용 베이커리, 브런치와 함께 커피를 파는 곳도 있다. 커피 외에도 주스나 모히또, 뱅쇼(vin chaud), 핫 초콜릿(chocolat chaud) 등이 메뉴에 함께 올라와 있는 곳도 많으니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처음 스위스에 갔을 때는 대중적이고 익숙한 커피를 찾아 스타벅스에 갈 때가 많았다. 로컬 카페에 가면 커피맛도 생각보다 만족스럽지 않고 불어(불어권인 로잔은 불어로, 독어나 이탈리아어 사용 지역에서는 해당 언어)로 표기된 메뉴판을 보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 배웠던 불어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작업기억에서 자동 삭제되었고, 다시 불어 까막눈이 된 나는 메뉴판을 한참 들여다 보아도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인 상태로 그나마 추측이 가능해 보이는 메뉴들을 골랐다.
로컬 카페에 갔을 때 현지어로 표기된 메뉴들은 조금의 부지런함과 성의가 있다면 모바일 어학사전으로 검색을 해봐도 되고, 메뉴판 전체를 사진으로 인식하면 번역을 해주는 번역 어플들도 많이 나와있으니 사용하면 좋겠다. 20대의 어린 요즘 친구들(?)과 함께 음식점이나 카페를 찾을 때면, 인스타그램에서 해당 지역의 맛집들을 해시태그로 검색해서 사진 이미지로 고른 후 메뉴를 선택하는 새로운 방법을 선보여주기도 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 인간인 나로서는 신기하고 젊은 세대들은 이렇게 다르구나(? 왠지 연식이 느껴진다)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로잔의 로컬 카페들을 찾았을 때도 일부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는 따로 메뉴판을 주지 않고 테이블에 QR코드를 붙여놓고 해당 코드로 접속하면 메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비교적 둔감한, 느리게 가는 유럽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디지털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커피 메뉴의 경우 불어로 쓰여있더라도 영어와 철자나 표기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알아보는 데 크게 어렵지 않다. 다만 따뜻한 메뉴는 쇼(chaud), 차가운 메뉴는 프와(friod)라는 것 정도는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스위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겨울철에 와인에 설탕과 계피 등을 함께 넣고 끓여 마시는 '뱅 쇼(vin chaud)'도 불어로 와인을 뜻하는 뱅(vin)과 뜨겁다는 의미의 쇼(chaud)를 합친 말이다. 와인의 알코올 성분은 거의 날아가고 향긋한 와인향과 과일향, 계피향이 어우러져 겨울철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되는 유럽식 쌍화탕이다. 핫초콜릿을 뜻하는 쇼콜라 쇼(chocolat chaud) 역시 '쇼'라는 단어가 함께 있다.
스위스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차츰 로컬 카페에 많이 가기 시작했다. 스타벅스처럼 메뉴가 다양하거나 평소 마시던 커피와 비슷한 느낌은 아니지만, 로컬 카페들만이 주는 분위기가 좋아서다. 획일화된 프랜차이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가게들만의 개성과 주인장의 성격, 아기자기한 분위기 등을 조금 더 경험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작업기억 속에 머물지 못했던 불어들을 재학습 과정을 통해 다시 머릿속에 붙잡아 두고 싶기도 했다. 때로는 짧은 불어로 띄엄띄엄 메뉴를 주문해보는 연습도 해보고, 어떤 날은 주문에 성공해 혼자 기뻐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에 세 달 살기로 로잔을 다시 찾았을 때는 예전에 즐겨 찾던 로컬 카페들과 함께 새로운 카페들을 찾고, 도장 깨는 재미에 한동안 빠졌다. 서울에서 성수동, 송리단길, 합정동, 연남동 등 새로운 젊음의 거리들마다 많은 카페가 생겨나고 저마다의 감성을 자랑하는 것처럼, 로잔에서도 그 정도의 붐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구석구석 전에 가보지 못했던 각양각색의 카페들이 있었다.
로잔 시내를 다닐 때마다 항상 2층 야외 테라스에 사람들이 빈자리 없이 앉아있는 걸 보고 언젠가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인데, 미국인 친구 추천으로 방문해 보았다. 레스토랑과 바, 카페를 함께 하는 곳인데, 낮에는 브런치 메뉴와 팬케이크, 카페 메뉴로 영업하고 저녁부터 늦은 새벽까지는 주류 위주의 바(bar)로 운영하고 있다. 야외 테라스에 앉으면 로잔 중심가가 내려다보이는데, 식사 메뉴를 주문해야 앉을 수 있다고 한다.
나는 낮에 가서 음료와 디저트를 즐겼는데, 개인적으로는 아이스 차이 라테가 시킨 음료 중 제일 나았다. 말차 라테는 시키지 않기를 권한다(아쉽게도 녹차 파우더가 우유를 잠시 스쳐 지나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른 로컬 카페에 비해 음료가 조금 가격대가 있는 편이지만, 아늑하고 힙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분위기 있다. 디저트와 브런치 메뉴가 훌륭한데, 음료와 함께 주문한 디저트의 데코레이션이 매우 예술적이었다.
팬케이크는 오후 2시까지 판매하는데, 12 CHF이다. 한 번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갈 때마다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쉽게도 먹어보지는 못했다. 브런치 메뉴 중 에그 베네딕트도 유명한 것 같다. 가격은 24 CHF으로 한화로 약 30,000원 정도다. 브런치 하나에 뭐 그렇게 비싼가 싶겠지만, 예쁜 스위스 풍경과 반대로 스위스 물가는 매우 사악하다. 이 정도 가격이면 일반적인 스위스 물가에 비해 비싼 것은 아니다(잠깐 눈물 좀 닦고 가실게요...).
오래되고 세월의 흔적이 많이 느껴지는 스위스 카페들 중 젊은 감성을 가진 곳을 찾고 싶다면 Loxton과 함께 이곳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역에서 거리가 조금 있는 편이라 걸어오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지만, 동네 모퉁이 구석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오후의 한가로움과 어울리는 곳을 찾는다면 이곳이 안성맞춤이다.
Loxton과 마찬가지로 다른 로컬 카페에 비해 메뉴가 다양한 편이고, 유럽에서는 찾기 어려운 플랫 화이트도 마실 수 있으니 호주식 커피나 유럽식 커피 이외의 커피 맛이 그리운 사람들은 한 번쯤 가봐도 좋겠다. 이곳의 특이한 점은 카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느낌의 책, 작은 공예품이나 생활용품 등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카페 주인도 젊은 사장님이라서, 굳이 비교하자면 서촌이나 해방촌 어딘가의 1인 서점과 카페를 겸한 장소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손님들 역시 주로 20대의 젊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고, 노트북을 가져와서 작업하는 사람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오기 전 코로나 PCR 검사를 하는 임시 검사소가 마침 이 카페 바로 근처여서 기다리는 동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스위스에서의 코로나 검사와 백신 접종은 다른 편에서 다루고자 한다).
개인적으로는 커피맛이 다른 카페들보다는 좋았지만, 한국의 진한 커피맛에 비해서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커피보다 함께 시킨 쿠키가 더 맛있었다. 하지만 조용하고 한적한, 차분하고도 섬세한 이 카페만의 분위기가 좋아서 여러 번 방문했다. 다만 여느 스위스 카페들이 그렇듯 이곳 역시 영업시간이 오후 5시까지기 때문에 충분히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오전 시간 혹은 이른 오후에 가는 것이 좋다. 영업 시작 시간은 오전 8시부터다.
로잔 시내를 둘러보고 이곳까지 조금 걸어 내려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조금 더 걸어내려가 우시(Ouchy) 호숫가로 내려가 백조들과 잠시 산책하고 호숫가의 경치를 즐기면 반나절이 금방 간다.
이곳은 카페보다는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럼에도 카페 리스트에 포함시킨 것은 음료만 마시는 것도 가능하고, 아름다운 카페 외관과 이곳에서 즐길 수 있는 풍경 때문이다. Palais de Justice와 연결된 잔디밭, 공원을 따라 조금 걸어 들어오면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식사나 커피 메뉴를 주문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맛을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아름다운 레만 호수와 푸른 나무, 잔디를 내려다보며 야외 테이블에서 잠시 여유를 즐기다 보면 스위스 현지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방문했을 당시에는 코로나로 실내 자리에는 앉을 수 없었는데, 실내 분위기 역시 근사하니 식사 메뉴를 주문해서 즐기는 것도 좋겠다.
비싼 외식이 부담스럽다면 여기에서는 음료나 디저트만 즐기고 대형 슈퍼마켓인 MIGROS나 COOP, 또는 베이커리에서 샌드위치, 치킨, 빵, 초밥 등을 사서 Palais de Justice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 앉아서 먹는 것도 추천한다. 실제로 가족, 친구 단위의 많은 현지인들도 그런 식으로 피크닉을 즐긴다.
이곳도 Brasserie de Montbenon과 마찬가지로 레스토랑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곳이다. 실내 레스토랑에서는 식사 메뉴를, 야외 테라스석에서는 음료 메뉴를 즐길 수 있다. 스위스에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갈 때 줄 서서 기다려본 경험이 없는데(내가 핫플레이스를 많이 가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은 일요일 오후 방문했을 당시 30분 정도 대기 후 입장할 수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왔다가 고도가 높은 이 지역의 직사광선을 30분간 그대로 맞고 나니 콧잔등과 목주변이 발갛게 익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에서도 인스타그램으로 입소문 난 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젊은 힙스터들이 많이 찾는 것 같은 이곳은, 호텔과 리조트도 겸하고 있다. 로잔 시내로부터는 거리가 있는 보(Vaud) 지역에 위치해 있어 기차를 타고 오거나 차로 방문하는 것이 편하다.
로잔에서 인근 지역인 브베(Vevey), 몽트뢰(Montreux)까지 계속 이어지는 레만 호(Lac Leman)를 따라 산비탈에 아름답게 펼쳐진 라 보(La Vaud) 지역의 포도밭은 유네스코에도 등재되어 있다. 많은 포도밭만큼이나 로잔은 질 좋은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로잔 기차역에서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마다 라 보 지역을 통과해 지나치는데, 그때마다 아름다운 경치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레스토랑 겸 카페가 유명한 이유도 바로 라 보 지역의 아름다운 풍경 때문이다. 아무 필터를 쓰지 않아도 천연 그대로의 색감이 카메라 렌즈가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반짝거린다. 찍기만 하면 화보가 되는 마법 같은 풍경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 샷을 남기기도 하고, 와인이나 가벼운 음료를 즐기며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광경을 만끽한다. 힘들게 입장한 만큼 사람들이 한 번 자리 잡으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대기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사람이 많은 주말보다는 평일에 가면 좋을 것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le deck으로 해시태그 된 사진들을 한번 찾아보면, 이곳에 왜 그렇게 사람들이 몰리는지 쉽게 납득이 간다.
이 밖에도 즐겨 찾는 카페들이 더 많이 있고, 내가 아직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가보지 못한 곳들도 많다. 방문했던 곳 중 커피맛뿐만 아니라 풍경이나 분위기 등도 고려하다 보니 커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경치에 더 집중한 곳들도 있지만, 스위스에서 현지의 느낌을 즐기기에 좋은 곳들 위주로 추려보았다.
외국이라도 오래 지내다보면 점차 익숙해지고, 늘 새로움 가득한 여행의 느낌보다는 평범한 일상에 가까운 날들이 늘어간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카페를 찾는 일은 일상 속 작은 재미를 주었다. 언젠가 다시 그런 시간이 찾아오기를 기대하며.
어서 코로나가 진정되어서 예전처럼 다시 걱정 없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