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때] 홍콩 2015
국수 한번 먹기 힘들다.
홍콩 노점 식당에서 메뉴판을 놓고 아줌마와 씨름을 벌이고 있다.
"돼지 국수 하나랑 소시지 토마토 국수 하나 주세요."
"!##&%*&*($@!@()_+(&%$#$"
"돼지 국수랑 소시지 토마토 국수요!"
"*(%^*%$#%#@#^^&_(*&#$!@@!#$^!"
'하아............'
사실 처음부터 이 식당에 오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맞은편에 위치한, 양조위도 단골이라는, 아주 유명한 국수집을 찾아갔는데 12시 30분부터 오픈이라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결국 고픈 배를 부여잡고 길 건너 이곳으로 왔다.
물론 그 노점식당엔 여행자는 없고 현지인들 뿐이었다.
원래 그런 식당일수록 맛있다며 기대를 잔뜩 안고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지금 같은 메뉴만 몇 번째 똑같이 말하고 있다.
코팅된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천천히 말해도 아줌마는 답답해하는 눈치다.
뭘 가리키며 계속 같은 질문만 내게 던지고 있다. 나도 아줌마만큼이나 답답하다.
나는 영어로 아줌마는 현지어로.
너는 상행선, 나는 하행선.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못하는 영어가 이렇게 반갑게 들릴 때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한 홍콩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네, 국수를 주문했는데 아줌마가 뭘 계속 물으시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친철한 그 사람은 잠시 아줌마와 대화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말한다.
"국수 두 개에 모두 토마토를 넣을 건지 물어보시네요."
"아니요. 소시지 국수에만 넣을 거예요."
또다시 통역.
아줌마는 이제야 속시원하다는 듯이 주방으로 돌아갔고, 나도 이제야 한숨 돌리며 의자에 앉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뭘요."
여행 전 홍콩 사람 하면 왠지 모르게 '새침떼기'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다.
중국임에도 자신을 중국 사람이 아닌 '홍콩 사람'으로 소개한다는 일화와 그런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콧대 높은 자존심이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런데 이 땅을 디디며 만난 홍콩 사람들은 맘씨 좋고 친절했다.
내가 길에서 흘린 물건을 주워 달려와 다시 건네 주는 사람, 식당에서 나 대신 현지어로 주문을 도와주는 사람, 내가 뭔가 불편한 건 없는지 늘 관심 갖는 사람... 조용했지만 여행자인 내가 혹시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닌지 맘써주는 게 느껴졌다. 몸에 배인 편안한 친절이었다.
코팅된 메뉴판을 보며 '아까 아줌마가 그렇게 손으로 가리켰던 한자가 토마토라는 의미였구나' 하고 있는데 주문한 국수 두 그릇이 나왔다. 국수는 빨간 토마토에 맘 씀씀이까지 더해져 더욱 뜨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