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지는 중입니다] 프롤로그, 인생은 놀이공원
11년 전 입사 당시 내 월급은 150만 원이었다. 연봉 1800.
'못해도 이백은 주겠지'라는 내 기대(?)는 부사장님이 불러주는 숫자를 연봉 계약서에 쓰며 사인한 그날 무참히 깨졌다. 그러니까 이게 21세기 연봉같지가 않았다. 우리 아빠는 내 초봉을 듣고는 "어떻게 사년제 대학 나온 애를 데려다가..."라는 말로 인상평을 남겼다.
여행에서 만나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던 지인들은 내 입사 소식을 축하하며 연봉이 얼마냐고 물었다. 나는 '업 앤 다운'으로 알려주겠다고 했고, 삼사천에서 시작한 숫자가 이천까지 내려왔을 때 다시 한번 "다운"을 외치자 그들은 모두 내게 사과했다. "어우 야, 미안하다."
당시 '옥탑방 같은' 2층에서(난 아직도 2층이라 주장하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하니...) 여름엔 덥게, 겨울엔 춥게 살며 그래도 월급의 절반보다 더 저축했다. 그래봤자 저축액이 100만 원에 못 미쳤겠지만, 참 열심히 알뜰히 아꼈다.
한 달에 150을 받으면서 돈을 모은다는 건 참 막막한 일이었다. 그때 당시엔 가늠조차 되지 않았던 1억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릴까 생각해봤지만, 앞이 보이지조차 않았다. 그러니까 50만 원만 쓰고 100만 원을 모은다고 해도 8년도 더 걸릴 금액이었고, 현실의 난 다달이 100만 원을 '당연히' 모을 수 없었다. 연봉 1800은 그런 돈이었다.
다행히 해가 갈수록 월급이 올랐다. 상승률로 따지고 보면 참 큰 숫자였는데, 처음이 너무나 작고 소중했던 내 월급은 더디 크는 강아지처럼 고만고만했다. 그러니까 올랐는데 오른 것 같지 않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매번 든달까.
노동강도가 무색한 작고 소중한 월급에, 회사 상사가 주는 스트레스. '난 이 일이 안 맞나봐'를 외치며 자존심상(?) '3개월 수습만 버티고 그만두자' 했지만, 어찌저찌 11년째 일하고 있다. 그 사이 내 통장에는 티끌이 쌓이고 쌓여 200000000이 모였다. (물론 대부분이 전세자금에 들어가 있어서 통장의 숫자는 여전히 작고 소중하다.)
내가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산을 꾸역꾸역 올랐는데, 문제는 행복하지가 않다.
아니 왜 아끼고 절약해서 2억을 모았는데 행복하지 않냐고! 억울하다. 그 사이 내 월급과 비교할 수 없게 올라버린 집값에 이 돈으로 집을 사기는 11년 전 만큼 막막한 일이 돼버린 탓도 있을 거다. 근데 그것만으로는 모든 게 설명되지 않는다. 내 안에 어딘가에서 회로가 꼬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고, 순간순간 많은 작지만 소중한 깨달음들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내가 행복해지려고 쓰는 글이다. 일명 '인생은 놀이공원'. 놀이공원에 표를 끊고 들어왔으니 신나게 놀다 가려면 나는 대체 뭘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자문자답의 결과다.
나처럼 막막하고, 우울하고, 한없이 무거운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보고 1g이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