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삶의 체험이 되기까지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
동시에 두 권의 책을 받아 들었다. 두 권 모두 시를 다루고 있는 난다 출판사의 책이며, 시로 채운 생으로 살다 간 두 작가의 책이다. 하지만 두 책을 번갈아 가며 읽다보니 서로 다른 매력에 푹 빠지게 한 책이었다. 허수경 시인의 《사랑을 나는 너에게서 배웠는데》가 시로의 입문을 돕는 열쇠 같은 역할을 했다면,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는 깊은 물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준비된 도구와 같았다. 그 도구에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렵지만 그를 활용해서는 바닷속을 속속들이 살펴볼 수 있듯이, 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듯이 선생의 글을 이해하기는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결국 이 책을 통해 시의 세계에 한 뼘 가까이 다가간 기분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황현산의 현대시 산고》는 시를 활자 자체로 읽기만 했던 무지한 독자에게 그 놀라운 깊이를 잘 벼려진 문장들로 깨닫게 해주는 황현산 선생님의 유고 시 평론집이다.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서부터 참 많은 시를 읽어왔지만, 그중 마음에 오래 남는 시는 없었다. 아, 그래 그 시 들어는 봤지. 하면서 찾아 읽을 생각을 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는 활자 자체로 읽어내리기에 급급했고, 내게 시는 어렵고 거룩하며 고귀하여 범접하기 어려운 글로 머물렀다. 시는 이미지라고 하던데, 그 이미지가 와닿는 시를 찾기란 어려웠다. 평론을 읽으면 조금 쉬워질까 하고 펼쳤다가도 수준의 장벽에 막혀 쓰러지길 반복했다.
황현산 선생님의 산문집을 처음 읽었을 때도 평소에 읽었던 책의 수준에 비해 너무 높았던 탓에 책장을 넘기기가 힘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읽을 힘이 났던 것은,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잘 벼려진 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서포터즈 활동으로 들어든 신작도 그랬다. 산문집보다 더 어려운 단어들과 문장들로 이루어진 글인 까닭에 한 문장을 여러 번 되새김질 해야했다. 더디게 읽어가다 이 부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시가 없어도 사는 사람들에게 시는 거룩하고 고결하나 메마를 뿐인 상징이지만, 시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시가 제 삶의 보잘것없는 체험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간 나는 시가 없어도 사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시는 내게 거룩하고 고결하지만 메마를 뿐인 상징이었던 것이다. 시의 언어가 없어도 충분히 풍성한 삶을 살았던 걸까. 그 거리감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시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시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에게 시는 그저 체험이다. 거룩하고 고결하여 범접하기 어렵고, 피부에 닿지 않아 무미건조하게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삶 곳곳에 스며들어 보잘것없는 체험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서야 학부시절 시를 사랑했던 얼굴들이 떠오르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이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시에 목숨을 걸게 될 것이라고 말할 자신은 없다. 하지만 나의 메마른 삶에도 언젠가 그 아름다운 언어가 보잘것없는 체험처럼 가까이 느껴지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는 희미한 희망을 엿볼수는 있었다. 스쳐 지나간 독자인 내게 이 책은 어쩌면 무례하기 그지없는 독자에게 시에 대한 깊이를 잘 만져진 문장으로 깨닫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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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다 서포터즈 활동으로 본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