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nia Jun 10. 2020

첫날부터 퇴사각?

여행잡지 에디터 1일 차

한국잡지교육원에서 4개월 간 취재기자 교육을 마쳤다. 교육원과 협력을 맺고 있는 경제 주간지, CEO 전문 잡지 등 여러 곳에 입사 지원을 했으나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니, 교육원을 통해 취업을 하는 것은 어려운 걸까? 홀로 구직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에 부장님께 연락이 왔다.

"여행 잡지에 지원해 보는 것은 어떤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이기에 홀로 유럽을 두 차례나 다녀오며 여행 잡지 에디터를 한다면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육원 수료식 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고 당일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이제 진짜 사회생활 시작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지만 첫날부터 지각을 할 수는 없지.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처음 겪는 출근길 지옥철이 버거웠다. 게다가 2호선이 고장 나 대림에서 10분 넘게 다음 차를 기다렸다. 지각하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도 제시간에 도착했다.


회사에 첫 발을 들이자마자 나에게 부여된 첫 번째 업무는 '청소'. 월요일은 대청소 날이라 그렇다고 한다. 빗자루를 들고 계단을 쓸며 생각했다. '이게 아닌데.'

첫날부터, 그것도 첫 번째 업무가 청소라니. 낭만적인 여행 글을 쓸 것이라 꿈꿨던 과거가 한순간에 빛이 바랬다. 그래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열심히 쓸고 닦았다. 


청소를 마치고 내 사수로 보이는 기자 분이 묻는다. "담배 피우세요?"

면접 때도 대표가 나한테 묻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내가 담배 피우게 생겼나?

그래도 담배 피우는 사람과 함께 일하게 된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흡연자이기 때문이다.


그와 담배 타임을 가지는데 본인은 곧 나갈 것이라고 한다. 뭐라고? 어딜? 회사를?

그렇다. 알고 보니 나는 그의 후임이었던 것이다.

입사를 결정하고 나서 부모님은, 특히 엄마가 내 입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 부산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딸내미가 박봉에 대우도 좋지 않은 작은 잡지사에 들어간다고 하니 실망이었겠지. 입사 전, 부산에서 마지막 자유(?)를 누릴 때 엄마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나 누구 내보내고 니가 대신 들어가는 거면 바로 튀어나라와. 알겠제?"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심지어 나와 같이 입사한 한 분은 나의 상사고 그분도 원래 팀장을 대신한다고. 이 잡지사에는 기자를 두 명 밖에 두지 않으니 나와 그 사람이 이제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오전 내내 계속된 인수인계에 안 그래도 혼란스럽던 머리가 더 꼬였다. 신입 에디터로서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갈 줄 알았는데 잡지 생산 중 절반의 책임이 온전히 내 몫이라니 부담이 상당했다. 정신없이 자료를 찾고 글을 쓰고 다듬으며 하루를 꼬박 보냈다.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하루를 보내니 완전히 녹초가 되어 더 이상 회사에 있기 싫어졌다. 눈치를 보다 6시가 조금 지나 퇴근했다. 신입 사원은 맨 마지막에 나와야 예쁨 받는다던데, 박봉인 곳에 나의 시간까지 더 쏟을 수는 없었다. 


배울 게 있을 거라 생각해 들어온 이 곳, 앞으로 내가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는 모양이다. 첫날부터 퇴사각 뜨는 나, 비정상인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