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정해져 있는걸
나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손톱을 뜯는 것. 가지런히 자란 손톱을 보면 뜯고 싶다는 욕망이 뇌를 잠식해 뜯어버린다. 뜯겨진 손톱과 남은 손톱은 못생긴 모양으로 자라 버린다. 이젠 별 볼일 없는 손톱이 되어버렸지. 특별했던 가지런한 손톱은 순식간에 별로 쓸모는 없는 보통의 손톱이 되어버렸다. 이석원은 이런 일상적인 일에서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어떤 섬뜩한 자각을 느낀 걸까? 사실, 손톱 따위는 금방 자라기 때문에 기다리면 그만이다. 그게 못생기게 자라던 아니던. 하지만 이석원이 느낀 그 섬뜩한 자각은 결코 일반적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언니네 이발관의 5집 <가장 보통의 존재>를 수도 없이 들어보고 이석원의 자각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았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아파도, 소중한 친구를 잃어도, 가족과의 불화가 생겨도, 좋지 않은 엔딩의 연애를 해 보아도(이혼만큼은 아니지만) 그 섬뜩한 자각은 아직은 내가 이해하기란 버거웠다. 앞으로 몇십 년 더 살아보아야 이해가 되는 걸까? 이것마저도 나는 확신하기 힘들었다.
나는 이 앨범을 시적으로도, 사운드적으로도 참 아름다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잔잔하고 감성적인 모던 록 사운드와 이석원의 메마른 듯하지만 감정 충만한 보컬 사운드는 최고의 조화를 이루었고, 기막힌 비유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가사는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린다. 이 앨범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깊게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그 아름다움은 가중되는 기묘한 음악이다. 트랙 하나하나가 모두 가지런히 놓인 특별한 손톱이고, 아무리 내가 물어뜯어봤자 그 손톱들은 뜯겨지지 않고 그 특별함을 유지하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이지만 질리지를 않는다. 사실 손톱 따위와 비교한다는 것은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3번 트랙 '아름다운 것'을 듣고 있으면 저절로 머릿속에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의 어느 한 장면이 또렷하게 재생된다. 식을 대로 식어버린 사랑을 이어가는 조엘과 클레먼타인의 식사 장면. 난 이 장면을 참 좋아한다. '우리도 그런 커플이 된 건가?' '식당에서 보면 딱해 보이는 커플, 그 시체 같은 커플이?' 라는 조엘의 독백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의 끝부분에서 조엘과 클레먼타인이 기억을 지워버렸다는 모든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서로에게 이끌려 울다가 웃는 그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꼽지만, 내게는 이 장면이 뇌리 속에 박혀있다. 나에게 가장 특별의 존재가 가장 보통의 존재로 바뀌었으니. ‘아름다운 것’의 가사 내용도 익숙함은 미쳐 버릴 듯이 힘들고, 어떤 말도 우릴 스쳐가고, 나는 그녀를 쳐다보지만 그녀는 말이 없고, 나를 지켜야 하는 ‘아름다운 것’의 가사는 이 장면과 아이덴티컬하게 일치했다. 담백한 기타 리프와 드럼 리프, 가볍게 착지하듯 깔리는 신디사이저와 단단한 디딤발 역할을 하는 베이스까지 완벽하다. 이석원의 공연 영상을 보면 2절의 후렴 ‘사랑했다는 말, 난 싫은데’ 부분을 ‘사랑했다는 말, 뻔한 얘기’라는 가사로 바꿔 불렀었다. 뻔한 얘기라는 말은 사랑했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뻔하다는 뜻일까, 이젠 사랑하지도 않는데 사랑을 이어간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뻔하다는 걸까. 저 장면에서의 뻔한 얘기는 후자가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렇게 정해져 있는걸. ‘인생은 금물’에서의 가사 중 하나이고,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가사다. 신나는 반주와 상반되는 이석원의 일침 같은 가사가 일품인 트랙이다. '먼저 나온 사람'은 모두 별(죽거나, 누군가의 별)이 되어 사라질 것이다. 인생은 금물이고, 사랑도 금물이니 함부로 태어나거나 사랑하지 말라는 일침. 그러나 당신은 이 충고를 어기고 누군가의 별이 되어주러 떠난다는 가사가 참으로 아름답다. 인생이란 단어의 정의를 기막히게 압축한 노래이다. '권태'를 테마로 한다면 '아름다운 것'을, '인생'을 테마로 한다면 '인생은 금물'이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결국 '먼저 나온 사람'도 누군가의 별이 되어 주러 떠난다는 10번 트랙 산들산들의 결말은 완벽한 서사.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유튜브에 있는 5집 녹음스케치 영상을 보면 앨범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석원의 완벽주의적이고 지랄 맞은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광기에 가까운 하드한 믹싱 작업으로 인해 앨범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그대로 이해가 가는 영상이다. 그렇기에 6집의 발매가 늦어졌고, 재미있어야 할 음악이 창작의 고통으로 바뀌었기에 이석원이 음악을 관둔 것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의 과정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명반을 접하는 것이 아닐까? 이 고통마저도 나는 매우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는 매우 힘들겠지만... 나는 언젠가 언니네 이발관이 ‘나를 잊었나요?’ 하고 돌아오길 바란다. 7주는 매우 부족하고, 7개월도 매우 부족할 것이다. 그들이 마지막 앨범을 낸 지도 7년이 다 되어간다. 앞으로 7년을 기다린다 해도 돌아오지 않을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설마 그 이상 걸리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