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사랑한 가족이란 이름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기분은 고통의 지수로 몇 쯤 될까?
출산도 작열통도 다 고통의 수치가 정해져 있는데 저것만 수치가 없다.
남들은 아무렇지 않아서 없는 건지 아직 다 잴 수 없어 없는 건지 아마,
아마 후자에 가까워서겠지.
집이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한 팔로 짐을 싸고 같이 지낸 이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내가 먹는 약들을 한 번 더 공부하며 내 통증이 말기 암환자의 그것곽 같아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먹는 약을 먹고 있구나 새삼 느끼며 그 한 여름의 날씨에 깊이 더워하며 힘들게 되돌아간 기억밖에 없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공황밖에 오질 않아서 오른 한 손으로 짐을 다드는 정신이 너무 힘들었거든.
내가 뒤집어질까 걱정하신 할머니가 와주신 집이란 곳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전과 같이 모두가 동일하게 있었다. 나만 빼고.
나는 내방 침대에 누워 또 가쁜 숨을 내 몰아쉬고
또 들리는 소리에 죽거나 죽이거나 하고 싶은 충동에 미쳐버리고
화장실을 가려고 문을 연 순간 보인 팔을 잘못 보고는 미쳐버릴 것 같아
방문을 마구 내려쳤다.
왜 그러냐는 엄마의 물음을 무시하며 마구 내려친 방문이 그새 끼였으면 좋겠다 생각을 하며
가져다주는 약을 먹고 자려다가도 올라오는 공황에 뒤집어지는 내 모습에
이럴까 봐 왔다는 할머니의 말씀까지
정말 모든 것이 자살하고 싶은 순간이었다.
경기를 일으키니 데려가겠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따라
짐을 챙기시는 옆에서 나는 또 한 번 자살할 결심을 했다.
바다, 내 바다로 가겠노라고
이 뭍에서 살지 않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