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던 고통은 고통이 아니었음을,

CRPS를 아세요?

by Heni


CRPS, 복합부위통증 증후군.


이미 세상 덕에 PTSD라는 아주 지겹고 든든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나에게

외상 후 특정부위에 만성으로 지속되는 신경병성 통증이라니,

1형 진단을 받기 전까지 아니, 받은 후로도 한동안 나는 세상을 부정했었다.

모든 통증과 병세가 해당되지만 그것만은 아니길 바라면서.


당연하지 않은가,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워한다는 출산과 작열통 보다도 아픈 게 유명하다는 이 병을 찾아볼 때의 두려움보다

이미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낫지 못하는 병이라는 사실에 갇히고 싶지 않은 게.


무엇보다,

그 많은 일들을 겪고도 살아내려고 했던 나에게 하늘이 준 것이 이것이라니.

나에게 이러면 안 되잖아.


그렇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나에게 그랬고

감전이 되었던 23살 어리고 세상을 하나도 몰랐던 그날부터

세상은커녕 아직도 왜 내가 이러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26살의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평생을 함께 가야 하는 병이 되어 나를 아직도 괴롭히고 있다.


신경과 근육에 마취제를 맞아 팔이 움직이지 않아도 통증이 이는 병,

어쩌다 자연스레 낫는 사람들이 있어 불치라 부르진 않지만

원인도 치료법도 몰라 사실상 불치병과 다름없는 희귀 난치병.


나는 그 병을 착하게 살아왔더니 받았다.

내가 겪었던 모든 일에도 살아내려고 하니 받았다.


나는 그렇게 칼로 저며가며 혈관에 용암을 끼얹고 전기로 지지며 시리게 아픈 이 돌발통을

무시로 겪으며 세상에서 소외되어가고 있었다.


마약 진통제를 먹어도 듣지 않는 것이 이 병의 큰 특징이라고 했다.

특징답게 정말 하나도 듣지를 않지만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처방받은 약에 기대어 살았다.


원인도 치료방법도 모르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다만 통증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모르핀이 나오는 장치를 몸속에 심거나

척수에 전기자극기를 심어 통증신호에 혼란을 주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아직 너무 젊은 나이라 모르핀 기계로는 살아가는 세월만큼 약을 맞을 수 없기에 두 번째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이때즈음 나는 사실 그냥 죽고 싶었다.

언제고 안 죽고 싶었나 싶지만 눈물도 아무 소리 없이 흘릴 수 있게 되었던 이때엔 그저 죽음생각뿐이었다.

앞으로의 삶이 끝나버렸는데 더 살아 무엇하나 싶었다.

그러나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은 저 수술을 받고 희망이 다 사라진 채여야 부모님도 이해할 것 같아 수술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집에서

부모님께 쌍욕을 하며 주먹질을 하려는 동생이었던 것을 말리라는 엄마의 말에 나갔다가

입술이 터졌고, 내가 키워온 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무렇지도 않게 욕을 하며 게임을 하는 사람 같은 것에게 한 마디 하려다가

목을 졸리고 발로 차이며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고 아픈 팔까지 이용하면서 목을 졸라서야 그 폭행은 끝이 났다.

목에는 생채기가 발에는 피가, 아랫배에는 큰 멍이 들고서야 나는 가족을 잃었다.


수술을 앞둔 한 달여 전이었다.


극도로 사라진 희망에 정신을 놓고 나가 비를 맞으며 어떻게 죽을까를 계획했고

똑바로 혼내지 않는 부모님에게 상처받아 어떻게 해야 희망을 주고 죽을까 가장 고민했다.


바다. 그래 내가 좋아했던 것은 바다였지.

돌아갈 품이 없어졌지만 돌아갈 품이라고 생각하며 어느 바다든지 간에 나는 바다에서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수술이 끝나면 가서 죽는 거야.


어떻게든 피해를 남기고 죽고 싶었다.

실은 살고 싶었지만

더는 살 곳이 없었다.


그렇게 수술 당일 나는 혼자 짐을 싸고 나와 서울에 있는 병원까지 혼자 행했고

따라온 부모님을 성인이니 거부한다며 혼자 입원했다.

그러나 그 병원의 원무과장은 입원 초창기 약도 맞지 못해 통증에 잠들지 못하고 밤새 울었던 나에게 전화해

부모님을 들여보내라 반쯤 협박하고. 한 번만 더 소음을 내면 전원시켜버리거나 강제로 퇴원시켜 버린다는 얘기를 했다.


그 말을 듣고도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무력했다.

어쩌면 그냥 그렇게 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런 협박을 듣고도 시간은 흘러 수술을 받고

위치가 틀어지거나 문제가 생겨 4번의 수술을 혼자 버텨야만 했다.


그럼에도 난 병원에서 혼자 있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나를 도와주시는 옆 침대의 이모와 간호사 선생님들이 고마웠고

아무도 없는 지금이 너무나 마음편해 이대로면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나에게 퇴원 진단이 떨어졌고

아무말 하지 못한 채 퇴원이 하루하루가 가까워질수록 진정제를 맞아도 잠을 못 잘 만큼 공황이 심해졌다.


다시 본가로 돌아가야 된다는 생각이 나를 좀먹었다.

한 달간 병원에 있으며 조금 보였던 살고 싶었던 내 마음이 다시 꺼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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