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에 서서, 당신의 얼굴을 묻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일은 언제나 한 박자 늦어집니다.
이름 앞에 놓인 말들이 나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나의 움직임을 멈춰 세우는 표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라는 호칭도, 어떤 이름도
어쩌면 세상과 말을 섞기 위해 잠시 걸친
얇고 서늘한 외투 하나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스스로를 규정하기보다는
잠시 벗어 두는 마음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나는 늘 경계에 오래 머무는 편입니다.
안과 밖이 나뉘는 자리,
말과 침묵이 서로를 밀어내는 순간,
삶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상태로
가만히 숨을 고르는 지점에서
생각은 가장 느리게, 그러나 가장 깊게 움직입니다.
그곳에서는 확신보다 망설임이 먼저 도착하고,
답보다 질문이 오래 남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일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말하기보다는
끝내 말해지지 않는 것을
문장 가까이에 두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가끔은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오래 침묵해야 하고,
그 침묵이 문장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요즘 나는 "삶의 문턱에서"와 "HOMO QUAERENS"이라는 책에서 각각 백개의 질문과 응답으로 문장을 천천히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 문장들은 정답을 향해 나아가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의 하루에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자리 하나를
내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끝내 닿고 싶은 것은
의미가 아니라 얼굴입니다.
마주 보는 순간
나의 안전한 세계가 조금 흔들리는 그 얼굴 말입니다.
이곳 헨리북에서
이 글을 건네는 이유도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혼자만의 사유는
쉽게 닫힌 방이 됩니다.
나는 글이 책상 위에서 완성되기보다,
타인의 눈길 속에서
비로소 숨을 얻는다고 믿습니다.
이 문장들이 당신의 일상에
아주 작은 균열 하나를 남길 수 있다면,
그 틈으로 스며든 생각이
다시 나에게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전히 미완의 존재로
이 문턱에 서 있습니다.
오늘도 나에게 묻습니다.
“내가 나를 ‘나’라고 부를 때,
그 안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이 질문의 끝에서
나의 문장들이 당신의 시선과 잠시 머물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문턱 앞에서
서로를 비추며 건너는
동료 여행자들이니까요.
He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