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o O Nada 2.

by 래연








발렌타인 밀롱가에서 바를 빠져나오기 직전 오하라는 바닥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떨어진 귀걸이 한쪽. 그녀는 그것이 소녀의 것이라 믿어버린다. 누구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아마도 그 청년의 선물이었을까? 소녀는 발렌타이데이 선물로 그에게 초콜릿을 주었을 거고. 오하라의 심장은 부싯돌이 되는 것 같다. 누가 알아챌 새라 그녀는 귀걸이를 주워 든다. 그리고선 자기 차를 주차시켜 놓은 천변으로 향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예쁘지만 연약하기 그지없는 그 선물을 부숴버린다. 강물에 던진다. Adieu!



매우 늦은 밤 그녀는 발목께에 작은 장미가 그려진 스타킹을 벗는다. 그녀는 바에서 급히 빠져나오느라 옷 갈아입을 시간도 없었다.

손톱 끝이 스타킹에 스쳐 흠집이 난다. ‘젠장! 손톱 좀 다듬어야겠어’. 그녀는 백에서 손톱 다듬는 연장들을 꺼내어 손톱들을 자른다. 하지만 어쩐지 점점 더 끝이 가늘게 뾰족해진다.

‘용서할 수 없어, 정말 거슬려.’



그녀는 하얀 소녀의 홈페이지를 염탐하기 시작한다. 사진들, 일기들......‘이런 건 됐고’. 무엇보다 방명록을 봐야 한다. 오늘은 누가 다녀갔을까? 오하라의 눈에 낯익은 몇몇 이름들이다. 이 소녀의 관심의 범주에 들기 위한 남자들의 흔적. ‘한심한 치들 같으니!’

그러나,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소녀의 남자의 흔적은 없다. 비밀글 목록에 숨겨져 있을까?



그녀는 안절부절못한다. 이번에는 남자의 홈피에 접속을 시도한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번에는 패스워드가 필요하다. 음... 혹시 소녀의 생일일까? 아, 그것까지는 모른다. 그렇담 혹시 우연히 주워들은 적 있는 그녀의 본명이지나 않을까? 마침내 연결된다. 다행이다. 아니 불행이다! 이로써 뭔가가 분명해진다. 오하라의 이성에 꽂힌 플러그는 즉시 교란된다. 그녀는 화면을 닫지도 않은 채로 코드를 뽑아버린다. 한 번 더 손톱 끌을 집어 든다. 너를 통째로 가질 수 없다면 그저 잠시 바라봐주는 것만도 안 되겠니? 단지 한 번이면 족할 텐데. 겨우 탱고 세 곡 동안만이라도 우리의 네 다리로 하나의 심장이 되어볼 수 없을까? 너를 향한 나의 목마름, 그걸 풀려면 말이지, 와인 한 잔 채울 만큼의 너의 피, 그거면 충분해, 안 되겠니?











어느 수요일 저녁의 밀롱가. 이슬비.

일주일에 두 번씩, 주변 젊은이들은 의식을 치르듯 여기로 모여든다. 그들은 권태로운 삶을 탱고로 개종시킨 지 이미 오래되었다. 서울보다 훨씬 남쪽, 거의 남한의 심장부에 위치한 이 도시의 벤처 기업의 젊은 사업가라던가 과학 기술학교의 연구실의 학생들이 태반이다.


처음에는 가볍게 기분풀이처럼 오지만 곧 두세 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신실한 추종자가 되어버린다. 그들은 탱고의 화덕 속에서 자신을 불살랐다. 실제 그들은 밀롱가가 끝날 때까지 탱고의 좀비가 된 듯이 계속 춤추었다. 이렇게 점차로 그들은 마룻바닥을 떠도는 바의 유령들이 되어갔다. 예외 없이. 전염은 호된 것이어서 유일한 백신이란, 3분간의 사랑을 대체해줄 현실에서의 진짜 연애밖에는 없었다. 진짜 연애. 운 좋은 몇몇들은 사랑의 구원자에 의해 다행히 지하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세계로의 귀환.



지구 깊숙이 가로지르는 길이 있다면, 그 땅 속을 뚫고 간다면, 아르헨티나의 다른 맞은편은 남한이고 더 정확히는 바로 여기이다. 남한의 심장. 이상야릇한 심장. 심장 박동에 운을 맞추는 반도네온 소리.... 비통하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그 소리는 오랜동안 누적되어 온 심원한 恨으로 꽉 찬, 분열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너무나 쉽게 매료시킬 수 있다. 반도네온의 단말마의 음,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오리무중의 수요일. 바깥에 비는 그쳤을까? 안개는 점점 더 짙어진다.

오늘따라 시크릿가든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좋은 기회다. 오하라가 다가선다.

“나와 춤춰 주세요.”

춤 세계의 관례에 있어 여자의 요구는 통상 거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크릿의 남자는 공손하게 용서를 구한다. 미안하지만 저는 이미 선약이 되어 있어서요.

“뭘요, 몰랐네요, 미안한 건 저죠.”

오하라는 바의 주방으로 가서는 거무스름한 와인을 한 잔 따른다. 와인 방울들을 목에 흘려 넣는다. 남자는 지금 바 안의 누구 하고도 춤추지 않고 있다. 음악들이 잇달아 흐른다. 시크릿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갑자기 오하라의 귀에 영화“Assassination Tango"의 테마곡 ‘Una Emotoin'이 흘러든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다! 이 곡이 마지막이야. 나가야겠어.’



청년은 아직 그녀를 기다린다. 사실 그들은 방명록 같은 데서 만날 필요가 없는 사이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같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본의 아니게 남매가 된 사이다.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느 날 부부가 되었다. 바는 그들 은밀하고 애처로운 감정의 밀회장소였다. 바의 어느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다. 오하라조차도.



이날 초저녁에 오하라는 우연히 세븐 일레븐에서 소녀를 보았다.


소녀는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받느라고 가방을 의자에 잠시 놓아두었다. 그러는 동안 오하라는 가방에서 소녀의 핸드폰을 슬쩍했다. 청년이 그녀의 춤춰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였다면 그녀는 이 핸드폰을 바 안에서 소녀의 가방에 다시 몰래 넣어 놓을 것이었다. 그녀가 그러고자 했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탱고 바라는 곳은 열려 있고 소홀한 곳이다. 하지만 이제 끝났다.



청년은 문자를 받는다. ‘나, 우산이 없어. 흰 원피스가 다 젖었어. 너무 추워. 언제나처럼 강가 주차장 검은 소나타 옆에서 기다릴게. 어서 와’.

그는 지체 없이 나간다.

차 옆으로 다가간다. 소녀는 어디 있을까? 검정 소나타 문이 불쑥 열린다. 그녀는 그를 와인병으로 내리친다. 그는 쓰러진다. 손톱 가위로 한 번 더 목덜미를 긋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안개는 완전히 자욱하다. 하라는 죽은 소년의 목에서 피를 빤다. 한 잔의 피, 이걸로 충분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 도시에 이르는 땅 속 길로 얼마나 많은 망령들이 이동하였을까? 서로 맞서는 두 극 사이의 얼마나 무시무시한 자력인가?


나는 이 시간 이후로 탱고의 유혹, 이 자력을 벗어나느라 죽음 같은 감정을 맛봐야 했다. 이제 다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심장을 향해 다가가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어떤 밀롱가에서 그를 마주쳤다. 그는 내게 헤어진 후 처음으로 춤을 권하였다.


그의 리드는 탄탄했고 균형이 잘 잡혀 있었으며 부드럽고 편안했다. 그러나 그의 움직임들은 매 걸음마다 나에게 무언가를 묻고 있는 듯했다. 봐, 기억나지 않아? 네가 죽이고 피를 빨았던 자의 얼굴이?


나, 나는 춤의 침묵 속에서 그에게 답했다. 너, 너야말로 안갯속에서 밤새 너를 찾던 하얀 얼굴을 잊은 거야?



그게 마지막이었다. 나, 지금은 더 이상 지나간 시절의 유령이 아니기에. 내 춤추는 신발은 이미 벗겨져 저 멀리 버려져 뒹굴고 있다. 그것은 강을 따라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