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ngo O Nada 1.

by 래연














이것은 나의 긴 고통의 기록이다. 8년 전, 나는 두 명의 연인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중 한 사람이 기다림에 지쳐 나를 떠났다. 그에 대한 죄책감에 나는 나머지 한 명에게마저 안녕을 고했다. 풀지 못하는 슬픔을 껴안고 나는 지하 바의 계단을 내려갔다.

Tango O Nada, Tango or Nothing. 나는 거기서 춤추면서 나의 모든 고통을 잊고 싶었다. 하지만 바로 그 날, 그는 거기에 있었다. 그, 나를 떠난.


그는 벌써 탱고의 순례자 내지 순교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침내 두 달 전 그의 마지막 전화의 의미를 깨달았다. “오늘 저녁 널 어딘가로 꼭 데려가고 싶은데...” 불행히도 그때 나는 바닷가 근처를 여행 중이었거나 다른 또 한 명의 연인과 함께였을 거다. 내가 응락했다면 모든 게 달라졌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신중하지 못하게 답해버린 탓에 그는 등대도 항구도 없는 탱고의 바다로 떠나갔다. 그 위에 보이는 거라고는, 돌아올 수 없는 순례자들처럼 바다 위를 떠돌고 있는 수많은 별들뿐인.



잠시 그와 나는 가벼운 시선을 나누었다. 그게 전부다. 끝난 것이다. 그는 벌써 나를 대신할 다른 여자를 찾고 있었다. 이후로 나와 그는 탱고 안에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실은, 항상 우리 모두는 바 안에서 떠돌고 있는 영혼들하고 춤추고 있었다.

그건 사실이다. 이것은, 이 바의 전설적인 이야기이다. 음울한 눈빛을 한 고통스러운 망령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기대어 그들의 심장박동 소리에 위안을 찾는 그 탱고바.


당신들이 이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고 싶어 한다면 지금부터 들려주겠다. 마치 나의 것인 양 오래 동안 입에 담기 힘들었던 그들의 비밀을. 오랫동안 심장으로부터 그것들을 꺼내놓기를 무척 망설였었다. 그것들을 내놓음으로써 나의 밤들을 사로잡고 있던 망령들로부터 놓여날 작정이다.










어느 작은 파티의 밀롱가. 아마도 그것은 발렌타이데이 밀롱가. 여기 2월은 매운바람 탓에 매우 춥다. 거의 겨울의 끝. 마지막 추위. 하지만 봄은 가깝다. 봄의 아주 초엽에는 꽃샘바람이 있을 거다. 뼈와 심장에까지 파고드는 바람. 이 바람은 여기서 꽃핌을 질투하는 바람이라 불린다.



이 바에서 도로를 건너질러 내려가면 이 도시의 심장을 꿰뚫고 지나가는 작은 강이 흐른다.

3월이라면, 그 아래 천변에서,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를 밝히고 카오디오를 통해 탱고 음악에 맞추어 춤추며 연회를 즐길 수도 있으리라. 춤추고 먹고 불꽃놀이도 하면서... 목련이 필 무렵이라면. 그러나 아직은 춥다. 지금은 지하 실내가 훨씬 아늑하다. 바는, 사나운 추위에 떠밀려 모닥불 근처로 모여든 동물처럼 구석에 웅크린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몇몇은 서로 부둥켜 온기를 나누며 춤추고 있다.



저녁 늦게 파티퀸이 발표된다.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는 오하라 양!” 오늘 밤의 드레스코드는 붉은색이다. 이 색에 있어서만큼 누구도 오하라에 견줄 이가 없다. 그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나선다. 그녀는 이 상을 응당 가져야 할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자부심에 가득 찬 기쁨을 애써 감추며 잘 다듬어진 손톱으로 선물의 리본을 풀어헤친다. 그것은 거의 11센티에 달하는 굽 높은 댄스화다. 이 얼마나 갖고 싶은 빨강인가! 아르헨티나에서 온 신상이다. 모두가 박수를 친다.



오하라. 그녀의 아름은 ‘하라’이고 ‘오’는 나름 드물지 않은 성이다. 그런데 이 풀네임은 분명코 스칼렛 오하라를 연상시킨다. 이런 이유로 탱고 클럽에서 진짜 이름 오하라는 그녀의 닉네임이 되었다. 오하라는 춤출 때마다 언제나 불타는 붉은색이나 와인색 드레스를 입곤 했던 것이다.


잠시 그녀는 수줍음을 가장한다. 시선들을 가득 즐기려는 듯 그녀는 주위를 찬찬이 둘러본다. 그런데, 어느 한 구석에 시선이 멈추자 의기양양한 미소가 사라진다. 누구도 알아챔이 없이. 벌써 모두들 마지막 곡 ‘La Cumparsita’에 맞춰 출 파트너를 찾아 돌아가 있었으니.



오하라 그녀만이 아직도 멍하니 멈춰있다. ‘정말 거슬리는 애야’라고 그녀의 떨리는 시선이 중얼거리고 있다.


구석에 있는 이는 시크릿가든이다. 면 보자기처럼 창백한. 그녀는 흰 드레스를 입고 겨울의 엘프 인양 서 있다. 오하라의 눈에 너무나도 거슬리는 흰 옷.

특히 오늘. 드레스 코드에 무관심하거나 몰랐거나. 마치 다른 모든 이들의 빨강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그것은 오하라에게 명백한 도발이나 모욕인 것만 같다. 이 소녀의 얼굴 표정 또한 역시나 완전히 무심해 보인다.


게다가, 가장 나쁜 것은 그녀가 그와 있다는 사실이다. 그, 탐나는 그. 그는 소녀의 가녀린 어깨를 존엄한 망토처럼, 자신의 나긋하고도 묵직해 보이는 팔과 가슴으로 감싸 안고 있다. 소녀의 견갑골을 마치 부서져 버릴 수도 있는 어떤 것으로 여기듯이. 그들의 마지막 댄스.


음악은 꽤 빠르고 리드미컬하다. 반면에 느리고도 진지한 그들의 춤은 마치 그들이 그들만의 부드러운 비밀을 유지하려는 듯이 조금치의 존엄도 잃지 않고 흘러간다.

아... 저 남자 누구지? 그녀는 그의 닉네임을 떠올리지 못한다. 자비에르니 카를로스니 아니면 파블로... 이런 아르헨티나 이름 중에 하나일 거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람!



모든 춤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바 안의 사람들은 신발을 갈아 신기 시작하거나 춤추고 난 목마름을 달랠 한 모금을 찾는다. 레드 와인이라던가 미네랄워터를.


남자와 시크릿이 앉아 있다. 뭔가를 말하려는 듯, 하지만 침묵 속에 멈춰 있다. 오하라가 다가선다. “ 미안하지만, 네 등 뒤에 내 백이 있을 거야.” 되려 남자가 대신 조금 몸을 비켜준다. 고마워요. ‘그리고 내 가방도 고마워, 마침 거기 있어줘서’. 거의 연인처럼 보이는 이 둘의 침묵을 훼방한 것이 그저 기꺼울 뿐이다.



모두가 떠날 시간이다. 소년과 소녀 역시 일어서서 입구로 향한 다음 시야에서 사라진다. 영광의 시간 끝에 부조리한 시간이 이겨버렸다. 오하라는 칼끝처럼 날카로운 굽의 댄스화를 신발주머니에 넣는다. 곧, 암전.



사실 소녀가 온통 흰 옷으로 입은 것은 처음이 아녔다. 클럽의 모든 이가 기억하는 한 그녀는 늘 흰 빛이었다. 이따금 그녀는 검은 드레스라던가 좀 드물게는 연한 푸른빛을 입었다. 종종 꽤 자주 그녀는 머리를 흰 헤어밴드나 흰 꽃 한 송이로 장식했다. 재수 없어! 이따금 오하라가 뇌까렸다. 소녀가 붉거나 분홍의 색을 결코 입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녀의 차림새는 레이스도 프릴도 없이 언제나 간결했다. 파이거나 드러낸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거의 청소년기 소녀의 얼굴. 아주 자연스러운 검은 긴 머리. 파마라고는 해 본 적 없는 것 같은 머리다. 실제 어쩐지는 몰라도.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 아무도 그걸 들은 적이 없다. 웃음소리조차도. 그녀는 무례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그녀의 태도 전반에는 조금치의 과장된 구석도 없었다. 하여간 저속함이나 육감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바의 모든 남자들은 그녀와 춤추길 원했다. 그들이 그녀의 입술 주변에서 아주 자그마한 미소라도 불들을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그들이 그녀를 뛰어나게 잘 리드해낸 명백한 증거라도 되는 양 여길 것이었다. 이렇듯 그들은 그녀에 대한 도전 의지를 불태웠건만 정작 그녀는 그 누구와도 관례적인 세 곡 이상은 추지 않았다. 단지 ‘그’를 제외하고는. 탱고 세 곡을 춘 후에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감사를 표한다. 매번 파트너들에게 춤을 이어나갈 잠시의 틈도 주지 않은 채 눈을 내리깔고 에스코트 없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곤 했다. 당신이 남자라면 당신은 이런 사람 앞에서의 느낌들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녀는 단 한 청년 하고만은 네 곡이건 다섯 곡이건 추곤 했던 것이다. 그리고 역시 모든 밀롱가의 첫 곡과 마지막 곡은 그의 몫이었다.


춤의 기술로 보자면 - 아마 사랑의 기술까지도 - 오하라가 제일이었다. 그녀는 탱고 마에스트로들의 어떤 워크숍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때로는 잠시 휴직하고서는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거장들의 탱고 수업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그녀는 의료직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장식 동작들을 잘 다루어 구사할 줄 알았다. 춤에 있어서의 능란함은 거의 완벽했다. 게다가 그녀의 무르익을 대로 익은 볼륨 넘치는 아름다움이라니. 팔을 감아보고 싶게 만드는 가늘고 날렵한 허리선. 드레스 사이로 이따금씩 가볍게 드러나 보이는 두 가슴 사이의 굴곡. 탄성 가득한 엉덩이. 그런데 이 모든 매력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녀의 목덜미였다.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틀어 올려 쉬농 머리를 할 때면 드러나는 목선은 가히 위태로이 아찔했다. 그녀의 에너지는 그 누구도 저항치 못할 뱀파이어의 그것이었다. 특히 누군가와 춤추는 순간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녀가 하얀 소녀의 서투른 듯 무심한 듯 순수한 모든 태도들을 가증스러워했다.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은 강렬한 증오의 표적이 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