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그 날이다

by 래연








카메라.JPG



2014.11.2. 까마귀가 아악 아악 울었다.


그 새 할로윈도 지났다.

내가 램 카페에 내 숨결을 심기로 작정한 데에는, 가능한 한 현재를 응시하자는 목적이 있다.


실은, 현재를 흘러가는 모든 현상에 주목하여, 특히 내 의식의 안쪽으로 난 지형을 따라 모든 미세한 흐름까지를 첨예로이 기록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스무 살 즈음이었다. 그것은 연습장 두 권 분량이었는데 그 이후 나는 극렬한 자기혐오의 나날들의 희생양처럼 그 노트들을 다 버려 버렸다. 이제 그 기록들은 기억의 용광로에서 다시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그리워하여 다시 그것을 모방하려고, 기억의 감미에 대한 오마주로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하여도. 왜냐하면 그 기록들이란, 고통을 형언할 수 없어진 순간에, 의식보다도 깊은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나를 넘어서 썼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고통스럽지 않다. 세월과 내가 달라졌다.









바람이 굉장한 날이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테라스 자리를 포기하고, 문 바로 앞, 테라스만큼이나 앞의 정경이 잘 보이는 안쪽 자리에 앉았다. 이 테이블은 넉넉하게 널찍하고 이 주변으로 빛의 장난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테라스 자리에 비하여 딱히 부족한 것이 없다. 단지, 풍경을 끝없이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바람 말고는.

그런데 오늘 바람만큼은 충분히 시각적이기도 하다. 아까 내 아파트의 부엌 쪽 베란다 창문으로는, 아파트 정원의 나뭇잎들이 소용돌이치며 솟구쳐 올라 허공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보였다. 얼핏, 그것들은 나비 같았다. 바람이 들어 올린 나비들은 그대로 공중에서 열반에 들었다.

다른 쪽 베란다로는 재개발이 안 된 이 동네의 낮은 지붕들이 보이는데, 그중 어느 집에선 누군가 커다란 감나무에 올라 주황빛 감을 따고 있었다.


이어폰 안쪽으로 흐르는 Hugo Diaz의 Cuesta abajo.


다행인가? 아직 나는 새파랗게 젊어서, 검은 망토를 입고 낫을 든 누군가가 당장에 나를 따라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아직 탱고를 출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오후의 램 카페에서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티를 마실 수 있다.





바람은 내 모가지 대신 모자를 날렸다.


내가 이 카페에 올 때는 꽤 잘 차려입는다. 젊은 날의 기록 따위 마구 버리고 그토록 나 자신을 추하게 여겼으니, 지금이라도 한껏 예쁘게 입혀 줘야 하는 것이다. 망사 스타킹을 신을 때도 있고, 진기한 액세서리를 두를 때도 있다. 오늘도 다른 날 못지않았다. 빨간 스타킹에 크림색 펠트 코트, 손수 짠 모직 코바늘 목도리에 같은 소재 베레모.


그러나 흐뭇하게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에 이르자마자, 마침 잠복하던 짓궂은 바람이 내 모자를 싹 잡아채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그것을 멀리 데려가진 않았다. 대신 차로 가의 물웅덩이에 퐁당 빠뜨렸는데, 차라리 다행이었다. 더 멀리 갔더라면 질주하는 차바퀴에 짓이겨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모자를 주워 들고 다시 집에 들러 비슷한 다른 모자로 바꿔 쓰고 나왔다. 비슷한 모자가 세 개는 된다. 이번에는 경로를 바꿔 카페로 왔다. 신호등을 건너 천변 다리로 향하는데, 문득 까마귀가 아악 아악 웃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이 카페의 매력과 미덕에 대해서 단숨에 말해버린다면 재미없다. 벽에 어른거리는 무늬를 만드는 햇빛의 장난처럼, 매력이란 은근한 것이니까. 천천히 다가오는 것들을 한꺼번에 말할 수는 없다. 이 카페에 몸 담근 이상, 나는 결론의 세계와는 반대 방향의 왕국으로 가야 한다. 저 창밖에 더 이상 못 기다리겠다는 듯 온 세포를 비비적대는 나뭇잎들과도 나는 한 모금 한 방울씩만 대화할 거다.


이 카페에서 그냥 지나쳐 갈 수 없는 것들 중 하나는, 계속하여 달라지는 화장실 표어이다. 화장실 문을 닫고 완전히 개인적인 공간 속에 있게 될 때, 문 안쪽 벽에는 8절지 크기의 종이가 하나 붙어서, 거기 프린트된 한 마디가 눈에 확 띈다. 처음 보았을 때 그것은 ‘견디다’ 였다가, 오늘은 이렇게 바뀌어 있다.



오늘이 그 날이다

-짐 스토벌










리필


이곳의 주인은 내게 커피를 리필해 준다.

나는 내가 앉은 곳으로부터, 내가 아니면서 동시에 나이기도 한 모든 이들에게 감당키 힘들 만큼 벅찬 희열을 한 잔씩 따라 보낸다. 어딘가로 끝없이 향기를 전송하는 바람처럼 내 샘에서 길어 끓인 찻잔을 모두에게 건넨다.

“자, 이건 작은 불멸이에요.”


Au revoir. A de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