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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나를 부인하지 않는다

by 래연





에필로그


이윽고 혼이 몸속으로 돌아와 앉은 듯 눈이 떠진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다. 비 내리는 짧은 오후에 자다 문득 깨어난다.


이 순간은 이 오후의 작은 찰나일 뿐인가? 그럴 리가! 하나의 잠이란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의 인류의 모든 꿈을 품고 있다. 인류가 영장이랍시고 이 지상에서 활보하기도 훨씬 전 그 아득한 시절로부터 하늘과 바다와 자연, 동식물 광물 미생물의 역사가 누적된, 길고 난해하고 희한한 꿈으로부터 우리는 매번 새로이 몸을 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인간의 의식은 이 지구의 방대한 사극을 모든 밤마다 꿈의 무대에 새로이 올리는 희대의 작가이자 연출들이다. 누구나 하나씩의 극장을 갖고 있다.


주로 꿈을 통해 경험하는 비할 데 없이 생생하고 기이한 연극. 꿈의 무대 속에서 일상의 규칙들은 해체된다. 낮의 삶에선 언저리로 밀려나 소외되는 모든 사람과 감정과 사물과 현상들은 꿈에 나타나 본래의 자기 몫을 호소한다. 이들은 가면을 벗고 얼굴을 드러내거나 혹은 오히려 새로운 가면을 뒤집어쓰고서 알 듯 모를듯한 말들을 은밀히 속삭이기도 한다.

우리가 밤새 쉬는 듯 쉬지 못하며 벌이는 숨바꼭질과 암호 찾기. 낮의 삶은 이 꿈들을 잊거나 부인하려 들지만, 그럴수록 꿈들은 다시 또 밤과 어둠과 잠의 무대로 기어든다.



인형극 그리고 인형극 축제는 버려진 꿈들에도 옷을 입혀 주었다. 이 가장행렬을 마주칠 때마다 환호하며 뒤따른다.


16살 때 만난 랭보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서문에서 ‘옛날,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나의 삶은 모든 가슴들이 열리고 온갖 술이 흘러 다니는 하나의 축제였다’, 이 첫 구절을 처음 접한 순간을 기억한다. 모든 존재 사이에서 미끄러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낙원, 영혼의 고향이 거기 있었다. 랭보의 시 구절, 이 한 마디를 별똥별 쫓아가듯 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샤를르빌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만나는 곳이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인형을 만드시는 지미 님은 이 인형극의 세계에 매료되었던 순간을 회상하여 들려주셨다. 오래전 어느 날 광장에서 한 마리오네티스트가 능숙하게 줄 인형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 인형술사의 모습이 마치 신神 같아 보였다고 한다.


축제 열흘 동안 매일 마르세유 카드를 뽑았다. 타로카드는 운명의 지표다. 지표는 방향을 가리켜 보일뿐, 이미 정해진 사건을 단언하는 예고는 아니다. 미래에 대해 예상되는 확률은 자기가 매어져 있는 운명의 끈들에 한껏 주의를 기울이라 권고한다.



우리는 자기 운명의 마리오네티스트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의 독자와 관객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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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르빌 세계 인형극 축제 개막식에서, 천사 인형과 허공에서 하염없이 떨어지던 깃털의 향연.

사람들은 밤새 춤추며 즐겼고, 자루를 가져와 깃털을 담아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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