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의 삶의 시간은 내가 결석한 꿈속의 교실 같은 거였다. 그러니까 프랑스로 떠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어딘가로 떠나 있는 상태였으므로, 거기를 다녀오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어딘가를 헤매는 나를 기왕이면 다시 데려오는 거였다. 그럴 수만 있다면!
1년 전 나는 프랑스로 떠났었다. 어학연수. 동시대인들과 교집합이 적은 삶을 사는 나에게 어학연수는 스펙과는 아무 상관없었다. 프랑스어는 그저 이국땅을 점유하여 잠시 둥지를 틀기 위한 핑계일 뿐, 진짜 목적은 다른 곳에서 살아보기 자체였다.
새로운 생활, 새로운 규칙성의 발견, 머물러 살아보는 여행.
그런데 왜 하필 프랑스인가? 요즘 세상에 그다지 팔리지도 않는 프랑스어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허세 쩌는 일일 수 있다. 부인하지 못할 정도로, 과연 프랑스어는 허세를 부르기 딱 좋은 미학적 언어다. 프랑스어는 내겐 이를테면, 공중장소에서 메모할 때 옆 사람들이 엿본들 해독하지 못하게 하려는 나만의 은어이자 암호이다. 동시에 불행했던 어린 날의 고어古語였다. 삶에 대한 실망이 폭발하고 타인에게 번역하기 힘든 경험들이 거듭 생겨나 범람했을 무렵, 내 은밀한 심정들을 잠시 이주시켜놓던 휴양지였다. 지친 심신의 상형문자였다. 그래서 이 만만한 언어를 핑계로 프랑스에서 좀 놀며 쉬며 지낼 작정이었다.
프랑스어가 내게 만만해진 건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잘 만난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대학원생이었던 선생님은 여름 방학 특강으로 샹송과 칸초네를 40여 곡 정도 가르쳐 주었다. 그런 선생님의 감동적인 열정 덕에 나는 몇 달 배운 프랑스어로 랭보나 보들레르를 조금씩 주워섬길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학교에서 북촌 마을을 넘어가면 경복궁 맞은편에 프랑스 문화원이 있어서 나는 그 지하 영화관에서 프랑수아 트뤼포나 알랭 레네 등에 빠져 지냈다. 그때는 ‘목요 샹송’이란 프로그램이 있어 문화원 1층 카페에서 노래를 배우기도 했다. 지금은 학교도 인사동도 문화원도 모든 것이 변했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만만한 프랑스어로 자격증 하나쯤 따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내가 프랑스어를 익힐 당시는 델프 시험이 생기기 전이어서, 그때 나는 실력 측정의 필요를 느끼지 않고 문학 텍스트만 읽으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재학습의 필요도 있었다. 언어란 세월과 함께 변화하는 것이어서, 10, 20년 흐르면 발음 규칙과 용례들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되짚어 주지 않으면 그냥 옛날 프랑스어를 쓰고 있게 된다. 언어도 운동과 같아서, 단련하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든다.
이 모든 이유에 앞서 무엇보다, 연수를 빌미로 나이 들어 다시 한번 학교를 다녀본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무척 설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