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남에 대한 상상 하나 더.
나는 이 떠남에 대해 그다지 진지하지 않았다. 절반 이상은 놀러가는 기분이었다. 이것은 순전히 드라마들 때문이다. 뭇 드라마에는, 살다가 길이나 다리가 끊어진 주인공들이 가장 만만하게 택하는 것이 외국에 얼마간 다녀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들은 마치 오늘 준비해서 내일 떠나듯이 준비랄 것도 없이 소리 소문도 없이 있다가 자신의 떠남을 순식간에 통보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것저것 시간을 두고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비자에 관계된 서류며 현지에서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어학 복습이며 1년 동안 지낼 짐을 싸는 거며, 또 고양이 세 마리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가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며.
어찌나 모든 가치가 효용의 가격표로 매겨지는지, 이번 삶을 아예 버린 것으로 간주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다. 보이는 게 모두 장삿속이어서 장사판 벌일 줄 모르는 나는 이 한 생애 길게 파업 중이다. 팔리지 않으면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느끼는, 동시대인 모두가 걸려들어 돌아가는 수레바퀴 속, 별궁리 없는 스스로가 애처롭다. 본시 궁리란 무한한 법인데 왜 우리는 정해진 가짓수의 궁리에 허덕여야 하나. 덫 같고 함정 같고 모함 같다. 이 수상쩍은 세상에서 빗나간 예측들의 향연인 삶이여!
여러 번 뒤돌아보았지만 나는 유년기부터 죽도록 서러웠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나는 나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며, 자굴감과 의기소침을 통풍처럼 거느리고 있다. 만일 여기에 자살 충동과 관계된 인자라도 인격에 깃들여 있었다면 아마 여러 번 생물학적 죽음을 시도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러기에는 소년기부터 이미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어, 정신과 육체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굳이 육체를 죽일 엄두 같은 것은 내지 않았다. 살 의욕이 없기는 하지만 이 시공간이 충만하지 않다고 해서 반대의 선택을 할 이유 또한 딱히 없었다.
그리하여 억하심정 많은 미장트로프, 그게 바로 나다. 시대가 목청 돋우어 외쳐대는 도전과 성취라는 벤처의 미덕들은 내게는 섞이지 않는 용매들이다. 에너지 부족이다. Dream off. 어쩌다 보니 지금 이 글을 쓰는 공간 속에서만 살아 있음을 조금 느낀다.
다른 것들은 언제고 바뀌거나 죽거나 할 것이다. 내 주변의 모든 것 그리고 나마저도. 어쨌든 이 지독한 허무를 견뎌 내야만 한다. 왜 굳이 이 글을 쓰려는가에 대해 결코 자신 있는 어조로 철학을 덧붙이고 풀어써 가면서 웅변을 늘어놓지는 못할 것이다. 그냥 나 자신을 대면하는 최소한의 연습과 노력을 통해 삶의 공간을 만드는 거라 해두자.
내 삶의 계속되는 과제 중 하나는, 나를 짓누르는 식곤증으로부터 어떻게 이 휙휙 지나가 버리는 삶의 시간들을 건져내는가이다. 그리하여 살아가다가 사라져가는 모든 것들을 선명히 애도하고자 글쓰기를 택한다. 생각과 마음의 출산 주기에는 폐경이 없을 테니, 무언가를 쓰는 동안은 시간과 세월이 나를 쓸어가 버리도록 순순히 당하지 않아도 된다. 음악 같은 시詩를 쓰고 싶지만, 그러나 아직 나는 조바심이라는, 실체에 닿기에는 너무 긴 줄을 기어가는 작은 개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