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거두기 직전 곰인형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장면
오후 두 시쯤.
녀석은 곰 인형과 머리를 맞대더니 시원하게 기지개를 한 번 쭉 폈다. 그때 아이와 인형은 세상 누구하고보다도 친밀하고 편안해 보였다. 스무 해라는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온 나는 이 순간 오히려 소외되어 있었지만, 나와 내 고양이, 둘 사이 마음의 매개처럼 곰 인형이 거기 놓여 있는 셈이기도 했다.
마지막 기지개였다. 기지개 직후에 고양이의 뜬 눈으로부터 고양이도 세계도 사라져 있었다. 이전에 다른 누군가가 죽는 과정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나는, 삶에서 죽음으로의 이행이 그렇게 순식간임을 처음으로 느꼈다. 기지개 한 번 펴자마자 다른 단계로 가버린 그 과정은 흡사 죽음을 낳는 것처럼 보였다. 새끼를 낳는 것은 암고양이의 몫이지만, 죽음은 수고양이라도 낳을 수 있었다. 수고양이가 딱 한 배의, 딱 한 마리의 죽음을 낳고 나자 그 자리엔, 수고양이가 급히 빠져나간 수고양이 한 마리가 남아 있었다. 더는 울음소리를 내지 않는 수고양이 너머로 수고양이가 자기 죽음을 데리고 갔다.
눈을 감겨주려 했지만, 생각처럼 눈은 잘 감기지 않았다.
그때의 갈색 곰 인형은 피아노 위에 올려 두었다. 이 곰이 어딘가 웃는 듯한 표정이라는 것도 아이의 마지막 날들쯤에야 깨달았었다.
아이의 마지막 날들을 함께 한 곰 인형이 지금도 미소를 머금고 있다.
<세상 아름다운 것들은 고양이> 중에서
평소 의지하고 지내던 곰인형
4년 전 이 시각에 무얼 하고 있었는지 기억한다.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내 맏이 고양이 제롬의 장례식장에 있었다.
밖엔 억수같이 비가 퍼붓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서 돌아왔다.
그때 녀석의 죽음은 내 예상을 모조리 깬 것이었다.
오로지 고통에 신음하다 최후의 순간을 맞겠지 싶었지만
마지막 장면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평소 기대 지내던 애착 곰인형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더니
기지개 한 번 시원하게 펴고선 곧장 떠나 있었다.
사진은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이다.
사람도 그렇듯 고양이마다도 각자의 죽음이 있는 것 같다.
죽음을 고통이나 소멸 영원한 이별하고만 연결짓기에
죽음이 아프게 다가오는 것이다.
정작 떠나는 이들이 어떤 마음과 기분인지
그 순간 그들이 무얼 보고 있는지는
보내는 이는 다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