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난이대> 하근찬

상처를 이어 살아가는 법

by Henry




<수난이대>는 전쟁의 비극을 직접적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전쟁 이후의 삶을 보여준다.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끝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그 남겨진 시간을 따라가며 인간이 어떻게 고통을 품은 채로 살아가는지를 조용히 기록한다. 사건의 크기보다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은 상처를 안고도 일상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태도다.


하근찬의 문장은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함 속에는 삶을 오래 응시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이가 있다. 그는 비극을 극적으로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한 장면, 한 행동, 한마디 말속에 인간의 고통을 응축시킨다. 이런 절제는 감정을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이 더 오래 남도록 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 두 세대는 서로 다른 전쟁을 겪었지만 결국 같은 방식으로 상처를 입는다. 신체의 결손은 육체적 손실이 아니라 삶의 방식 전체를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강조하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지속이다. 그들은 무너져 내리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삶은 계속된다.


<수난이대>의 핵심은 세대의 연결이다. 아버지의 상처와 아들의 상처는 단절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어진다. 그러나 이어짐은 절망의 반복이 아니라 이해의 가능성을 만든다. 서로의 고통을 바라보는 순간 두 사람은 같은 자리에 서게 된다. 하근찬은 이 지점을 과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더 깊이 다가온다.


이 작품을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한다면 고통의 계승과 이해다. 고통은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만 동시에 고통을 이해하는 힘도 함께 이어진다. 인간은 상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수난이대>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이 소설이 건네는 교훈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누군가의 고통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것,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뒤에 숨은 시간을 이해하려는 태도 그리고 상처를 약점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우리는 종종 완전함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이 소설은 말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상태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수난이대>는 큰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한 문장 속에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힘을 드러낸다. 삶은 언제나 상처를 동반하지만 상처가 삶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하근찬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은 무너지지 않는 존재가 아니라 무너진 뒤에도 다시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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