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by Henry




운명은 그를 피해 달아나라 속삭였고

자유의지는 그를 향해 가라 외쳤다.


오이디푸스,

자신의 비극을 예언하는 신탁을 거부하며,

운명을 거스르려 했으나

결국 그것을 향해 달려간 자.


눈을 가리면 진실이 사라질까,

귀를 닫으면 신의 목소리가 멈출까.

하지만 운명은,

우리가 등을 돌릴수록 더 선명해진다.


황금빛 태양 아래, 한 사내가 길 위에 서 있었다.

먼지는 발밑에서 흩어지고, 바람은 그의 이마 위에 땀을 식혔다.


“네가 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삼으리라.”


신탁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던 날, 그는 길을 떠났다.

테베에서 멀어지면,

자신의 저주도 함께 멀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한 갈림길에서, 그는 노인을 마주쳤다.

언쟁이 있었고, 검이 번뜩였다.

그는 왕을 쓰러뜨렸고,

테베로 향했다.


운명을 피해 달아난 발걸음이,

그를 다시 운명의 심장부로 데려갔다.


얘기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된다.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질문의 끝에는,

운명이 감춰둔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뜨면 세상이 보인다지만,

때로는 눈을 감아야 진실을 볼 수 있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빛과 어둠, 질문과 대답,

운명과 자유의지가 엉켜 있는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고뇌를 그린다.


책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인간은 가장 행복한 순간에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


"운명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인가, 모르고 사는 것이 지혜인가?"


"눈이 보였으나 보지 못했고, 이제 눈을 감고서야 모든 것을 본다."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의 숙명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운명의 꼭두각시인가, 아니면 우리 삶을 개척하는 주체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운명은 신이 결정한 절대적인 것이었고,

신탁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러나 소포클레스는 이 작품을 통해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피하려 했지만,

과정에서 오히려 신탁을 완성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아니면 모든 선택은 결국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플라톤은 말한다.

"인간은 동굴 속에서 그림자를 본다."


진실을 아는 것이 더 나은가,

아니면 무지 속에서 행복을 유지하는 것이 나은가?

오이디푸스는 눈을 멀게 하면서도 진실을 보았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절망뿐이었다.


운명은 실로 짜인 태피스트리와 같았다.

실을 끊으려 몸부림칠수록,

그는 더 깊이 얽혔다.


그의 눈은 태양을 향해 열려 있었으나,

진실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그가 길을 걸을 때,

그의 그림자는 그보다 앞서 달렸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빛을 꺼뜨렸다.


운명을 보지 않겠다는 결단이었을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보았다는 깨달음이었을까.


우리는 오이디푸스처럼 운명을 거스를 수 있을까?

혹은, 우리가 거스른다고 믿는 선택조차

이미 예정된 길을 따라가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싸운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자신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따라 흘러가야 할까,

아니면 반대로 헤엄쳐야 할까?


오이디푸스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 아는가?"


질문 앞에서,

우리 또한 망설일 수밖에 없다.


Henry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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