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악마와 거래하려 하는가
괴테는 한 시대의 작가가 아니라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지성의 최대치를 실험한 인물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였고
과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무엇보다 인간 존재를 끝까지 탐구한 사유가였다.
그는 인간을 선하거나 악한 존재로 단순화하지 않았다.
괴테에게 인간은
끊임없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며
의심과 욕망 사이를 왕복하는 존재였다.
<파우스트>는 그런 복합적인 인간상을
가장 장대한 형식으로 구현한 작품이다.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조금도 만족하지 못한다.
지식은 쌓였으나
삶의 의미는 비어 있다.
그런 공허의 틈으로
메피스토펠레스가 들어온다.
악마는 유혹하지 않는다.
그저 제안할 뿐이다.
만약 어느 순간
파우스트가 “지금 이 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말한다면
그의 영혼은 악마의 것이 된다.
이 거래는
쾌락의 계약이 아니라
의미를 향한 절박한 도박이다.
파우스트는 사랑하고, 파괴하고, 방황하며
자신의 욕망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시험한다.
그런 여정은 구원과 파멸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 든다.
<파우스트>에서 악마는
외부의 절대악이 아니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이미 품고 있던
의심과 조급함, 오만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말로 옮길 뿐이다.
괴테가 묻는 질문은 명확하다.
인간은 왜 악마와 거래하는가.
답은 단순하다.
지금의 자신으로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말한다.
타락은 쾌락에서 시작되지 않고
의미를 향한 조급함에서 시작된다.
파우스트의 비극은
욕망이 아니라
멈출 줄 모르는 인간 의지의 과잉에 있다.
파우스트는 기다릴 수 없는 인간이다.
성숙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즉각적인 완성을 원한다.
악마와의 거래는
이 조급함이 선택한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러나 지름길은
대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다.
조급함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힘이 된다.
헤겔은
정신의 성숙이
부정과 매개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파우스트는 이런 과정을 생략하려 한다.
생략이 비극의 시작이다.
충동적 선택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이루어지지만
장기적으로 더 큰 고통을 낳는다.
파우스트의 선택은
의미 결핍을 해소하려는
극단적 충동의 사례다.
괴테는
구원을 도덕적 완성으로 보지 않는다.
인간은 끝까지 불완전하며
그런 불완전함 속에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존재로 남는다.
구원은 완성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탐구의 자세에 있다.
<파우스트>는
인간이 악마와 거래하는 이유가
쾌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견디지 못하는 조급함 때문임을 보여주는
인간 욕망에 대한 가장 장대한 성찰이다.
Hen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