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 공지영

상처를 품은 채로 살아간다는 것

by Henry




<고등어>는 세상을 바꾸겠다는 선언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상처 입은 개인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온다. 이 소설에서 공지영이 붙들고 있는 것은 거대한 이념이나 완성된 구원이 아니라 구원을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흔들림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는 일은 감동의 고조를 따라가는 경험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좌절 속에서도 끝내 관계를 놓지 않으려 하는지를 지켜보는 시간이 된다.


공지영은 언제나 아픈 시대를 통과한 개인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해 온 작가다. 그의 문장은 감정을 숨기지 않지만 감정에 기대지도 않는다. 고통을 미화하지 않고 분노를 장식하지 않으며 대신 상처가 남긴 삶의 균열을 그대로 드러낸다.


<고등어>에서도 그는 실패와 좌절을 하나의 과정으로 놓아두고 과정에서 인간이 무엇을 잃고 무엇을 끝내 붙드는지를 묻는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무너진다. 사랑에 실패하고 신념에 배반당하며 스스로의 선택 앞에서 흔들린다.


젊음은 빛나기보다 불안하고 열정은 쉽게 소진된다. 그러나 공지영은 이런 좌절을 개인의 무능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시대가 개인에게 요구한 과도한 기대와 책임의 결과로 읽어낸다. 인물들이 느끼는 허무와 분노는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조적 피로에 가깝다.

<고등어>라는 제목은 이 작품의 정서를 정확히 건드린다. 고등어는 흔하고 값싸며 쉽게 상한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일상적인 생존의 음식이다. 소설 속 인물들 역시 특별하지 않다. 대단한 성공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늘을 살아낸다. 상처를 안고 실패를 기억한 채 다시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건넨다. 공지영은 평범한 지속을 낭만화하지 않지만 끝내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작품을 하나의 키워드로 압축한다면 상처의 연대다. 인간은 혼자서 상처를 견디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있다고 해서 상처가 사라지지도 않는다. <고등어>는 그런 중간의 지점을 응시한다. 완전한 치유도 완벽한 구원도 없지만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순간만은 가능하다는 사실. 그런 인식이 인간을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일상으로의 교훈은 소박하다. 실패를 숨기지 않는 태도, 상처를 성취의 반대말로 취급하지 않는 시선 그리고 무너진 사람을 조언보다 경청으로 대하는 자세다.


우리는 흔히 강해지라고 말하지만 이 소설은 말한다. 강함은 회복의 전제가 아니라 회복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먼저 필요한 것은 버텨온 시간을 인정하는 일이다.


<고등어>는 밝은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절망의 책도 아니다. 그것은 상처 입은 인간들이 서로를 알아보며 만들어내는 최소한의 온기에 대한 이야기다.


공지영은 이 작품을 통해 말한다. 삶이 우리를 반복해서 실망시켜도 실망 속에서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 선택만은 여전히 가능하다. 문학은 이렇게, 상처를 없애지 않고도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남긴다.


Henry



이전 21화최인호 <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