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회사의 무제한 휴가 정책 뒤에 숨겨진 현실을 공개한다
수년 전, 저자가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미국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상견례를 하러 가야 하는 피치 못할 상황이 생겼다. 이미 그 해에 1~2 주 정도 휴가를 사용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사정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한국에 가서도 원격으로 근무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매니저가 당연히 승인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무제한 휴가 정책을 가진 회사들도 휴가를 가기 전에 상사에게 승인받아야 한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는 매우 달랐다. 매니저는 이미 사용한 휴가를 언급하면서 거절하려고 했던 것이다. 한국의 상견례가 얼마나 중요한 문화적 이벤트인지 미국인 상사에게 설명해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에게는 변명처럼 들리는 것 같았다. 결국, 상견례는 나에게 커리어보다 더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매니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가서 상견례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지만, 이미 매니저와 나와의 신뢰에 금이 간 것을 느끼게 되었고, 실제로 해당 분기의 내 실적 보고에는 매니저의 "보복"이 기재되어 있었다.
무제한 휴가는 오히려 나와 매니저 사이에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미국의 신규 기업들이 무제한 휴가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은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궁극적인 해결책으로 인식되어 많은 호응을 받게 되었다. 초기에는 낯설고 매혹적인 "혜택"으로 여겨졌던 무제한 휴가라는 정책은 미국에서 이미 익숙한 정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무제한 휴가를 도입한 기업들의 실제 현실은 어떠할까? 무제한 휴가 정책 자체가 회사에서 휴가 일수를 명시하지 않기 때문에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실제로 무제한 휴가를 도입한 회사들은 사원들이 이전보다 적은 휴가를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다. 또한,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회사들 중 일부는 실제로는 1년에 4~6주 이상의 휴가를 허용하지 않는 "무언"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왜 자유롭게 휴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일까?
미국에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회사들과 직업군들은 근무 시간이나 업무량을 통한 직원 평가를 포기하고 있다. 실제로 이러한 직업군에서 창의력과 성과가 뛰어난 인재들은 평균보다 적은 시간에 더 높은 품질과 성과를 내는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고, 그러기에 근무 시간과 업무 성과율은 성과와 상관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지어 이러한 직원들에게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나 휴가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그들의 업무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창의력은 규칙 속에서 꾸준한 속도로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인 듯하다.) 따라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직업군에서는 근무 시간이나 근무 성실함 보다는 최종 결과물이나 성과를 통해 역량을 평가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자율적인 환경에서 결과물을 통한 직원 평가를 도입한 회사들은 실제로 기업 생산성에 많은 향상을 기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좋은 결과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성과가 뛰어난 고성과자 들은 상대적인 평가를 하는 경쟁적인 문화의 기업에서 높은 기준치를 설정하게 되었고, 이러한 높은 기준치가 나머지 직원들에게 압력이 되어 돌아와 이러한 높은 기준치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나머지 직원들은 업무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높은 성과가 진급에 요구되는 경쟁적인 환경에서는, 고성과자 들은 빠른 커리어 발전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직원들은 회사의 높은 성과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수당을 받지 않고) 야근하는 현상이 발생하였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오히려 워라밸에 해가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로 인해, 출퇴근 시간이 유연하고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자율적인" 회사에서도 자발적인 야근을 강행하는 직원들이 증가하였다. 때로는 빠른 승진을 목표로 하는 커리어 중독자들과, 그러한 동료들이 설정한 꾸준히 높아지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압력에 시달리는 다른 직원들이 무제한 성과 발전의 악순환에 빠지기도 한다. (미국은 한국보다 해고 제도가 더 자율적이기 때문에 일자리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악순환에 함께 참여하여야 한다.) 물론, 모든 회사가 이러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과와 결과물을 중심으로 직원을 평가하는 상대적인 평가 시스템은 기업들에게 보이지 않는 (그리고 심지어 합법적인) “채찍”을 쥐어줄 수 있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사실상 무제한 휴가 정책이 도입되기 시작한 시점에도 이러한 정책을 제공하는 것 자체가 지각적인 변화로 인식되지 않게 되었다. 무제한 휴가 정책이 도입되는 시점에도 이미 많은 회사들이 무제한 병가와, 자유로운 출퇴근, 그리고 원격근무 같은 제도를 제공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환경에서도 이미 성과평을 통하여 기업들은 높은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무제한 휴가가 처음 소개 됐을 때에는 미국에서도 많은 화제를 끌었다. 하지만, 상당수의 회사들이 무제한 휴가 정책과 위에서 언급된 무언의 “채찍”을 병행하여 직원들이 오히려 휴가를 덜 쓰게 만드는 시스템을 만들어 내기도 하여, 무제한 휴가 자체만으로는 더 이상 혜택으로 보지 않게 만들었다. 미국에서는 원래 (법적인 측면이 아닌) 문화적으로 1년에 평균 15~20일 정도의 휴가를 제공하였으며, 일 년에 두 번 정도 2주 정도씩 휴가를 사용하는 게 기본 관례였다. 그러나 무제한 휴가를 제공하는 회사들은 휴가일을 인사 시스템에 기재하지 않기에, 직원들이 “눈치껏” 알아서 휴가를 알아서 쓰게 된다. 이렇게 업무와 휴가의 밸런스를 관리하는 임무가 직원 스스로에게 돌아가게 되자, 직원에게 휴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인위적인 모호함과 불안감, 그리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부여하게 되었다. 일정히 정해진 휴가만큼 휴가를 쓸 때는 당당히 휴가를 낼 수 있었는데, 무제한 휴가 정책이 도입된 모호한 환경에서는 직원들은 휴가를 쓰는 게 팀에게 헌신적이지 않는 모습으로 비치어 질까 하는 죄책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업무가 많은 시기에는 많다는 이유로, 업무가 적은 한가한 시기에는 한가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휴가를 덜 쓰게 되었다. 심지어 무제한 휴가가 도입된 회사에서 누군가 3주 이상 연속 휴가를 내게 되면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기도 한다. 이 정도로 눈에 띄는 정도로 휴가를 내게 되면 그 사람이 퇴사하려는 결심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제한 휴가 정책은 직원들에게 휴가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무모한 모호함과 불안감, 그리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부여하게 되었다.
또한 무제한 휴가 정책은 기업의 임원진들에게 숨겨진 이익을 제공하기도 한다. 미국을 예로 들면, 사용하지 않는 남은 휴가일에 대한 일당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미국에서는 그다지 퇴직금이라는 개념이 없다), 무제한 휴가 정책이 도입된 기업들은 휴가 사용일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휴가 일수가 정해져 있지 않기에, 밀린 휴가에 따른 일당을 지급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는 일종에 노동법을 (합법적으로) 회피하는 수법으로 사용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높은 업무량을 강요하는 기업들이 오히려 더 앞서서 무제한 휴가를 도입하는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무제한 휴가 정책은, 현실적인 성과량과 실적이 적절하게 운영되고 관리될 때, 직원과 회사 모두의 사이에서 큰 이점을 제공할 수 있다. 직원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궁극적인 유연성과 워라밸 향상, 창의성과 생산성 증대, 그리고 심지어 직원들에게 자율적으로 휴식과 회복을 할 수 있는 기회까지 준다. 기업에 입장에서는, 자율적으로 높은 효율성을 보여주는 직원들을 감시나 관리해야 하는 수고 비용이 줄어들게 되고, 무제한 휴가라는 혜택을 선호하는 인재들을 유인할 수 있으며, 심지어 같은 조건의 기업이 무제한 휴가 정책을 제공하면 월급을 10% 까지도 덜 받을 의향이 있다는 조사 까지도 있기에, 기업에게는 무제한 휴가가 인건비 감축에 오히려 큰 도움이 된다.
건강한 무제한 휴가 정책은 직원 각 개인의 유연성과 워라밸 향상, 창의성과 생산성 증대를 제공하며, 기업에게는 높은 직원 만족도와 심지어 인건비 감축까지 제공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어떻게 되나?
무제한 휴가 정책 자체는 창의적인 직업군에게는 궁극적으로 제공하여야 하는 논리적인 다음 단계인 거 같다. 이러한 직업군의 직원들은 무제한 휴가를 통해 개개인의 워라밸의 완성을 추구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제한 휴가 정책 자체만 가지고 기업의 워라밸을 평가하면 안 된다. 미국의 사례를 보다시피 그러한 정책을 도입한 각 기업들의 현실은 더 복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무제한 휴가 같은 정책보다는, 해당 기업에서 추구하는 실적 평가 시스템의 형태가 어떤지, 그리고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의 현실적인 일과 삶의 균형이 어떤지, 먼저 보아야 된다. 따라서 효율적인 무제한 휴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도입하려면 회사는 이에 따른 명확한 지침을 제공하고, 각 부서에 동등한 정책을 제시해 주며, 적극적으로 휴가문화를 조성하고 장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