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이런 말을 하더라.
집에 있는 내 방에 위치나 크기를 보면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고
내가 쓰던 방은 항상 집에서 제일가장 좁고 창문을 열면 밖이 아닌 현관이나 베란다가 나오는 방이었다.
처음 살던 집은 시원하게 말아먹은 아버지.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기간 동안 나는 내가 쓸 방이 어떤 곳인지 이사를 와서 알게 되었다. 동생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방을 보고 엄마도 머쓱했는지 "네가 일을 하니까 집에 와서 잠만 잘 것 같아서 하하하" 그 웃음뒤에 보이는 속내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동생들은 아직 학생이라는 명분하에 공부를 해야 한다며 큰방들을 주고 나에게 주어진 작은방은 침대와 옷장 간신히 노트북을 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다였다. 학구열이 그리 불타는 아이들이 아닌 걸 알기에 더는 하고 싶지 않은 감정소모들을 뒤로한 채 21살 어린 나이에 침묵이라는 뜻을 배우게 되었다.
"네가 장녀잖아." "맏이잖아.""성인이잖아." 이 단어들이 아무것도 모른 20대를 갉아먹었던 것 같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건 여태해오던 카페알바일거리뿐 아르바이트비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관리를 하라며 항상 훈수를 놓아대던 엄마. 돈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막냇동생 교복비에 동생들이 달라던 용돈에 가끔 주던 엄마생활비에 그간 저축해 놓은 돈들은 아버지 빚 갚는데 써버려 놓고 책임은 왜 나한테 물을라 한 것일까? 꿈도 많고 욕심도 많았던 20대 중반 포기와 희생이란 단어를 배우게 되었다.
폭력과 폭언이 오가던 집안이 너무 지쳐 26살 독립을 선언했다.
보증금 100/25 모든 동선들이 세 걸음이면 끝나는 아주 작은 원룸방이었다. 자칫 우울할 수도 있는 집이었지만 더는 외부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걱정거리가 없으니 마음만은 편히 살 수 있었다. 사회생활이 아직 서툴렀던 27살 혼자 산다는 말은 못된 누구에게는 나쁜 마음을 먹기 아주 쉬운 상대였던 것 같다. 티브이에서만 보던 일들이 나에게도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법적대응을 해도 법은 온전한 내편이 들지 못했다. 그렇게 27살 사회의 더러운 모면들을 알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더라 잊히는 게 아니라 무뎌지는 것이더라. 30대가 된 지금 잊고 살았던 기억의 파편들은 어쩌다 한 번씩 조각조각 나있던 것들이 한 첩의 그림이 되어 그때의 기억으로 나를 내보낸다. 지금은 괜찮다 지난 일이다 위로하지만 지독하게 더럽고 아픈 기억들은 마치 그림자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행복하게 잘 살면 그만이지." 하며 앞으로가 중요하다고 미래를 생각하라 하지만 그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당사자들에게 하는 무책임한 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