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루스 Sep 01. 2021

혼자 있고 싶지만, 또 같이 있고 싶어요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리뷰

이 글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MBTI로 사람을 알아보는 걸 좋아한다.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한 덕분에 MBTI를 수업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대학시절부터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은 어떤 사람인지를 MBTI로 알아보고 이해하곤 했다.


MBTI에 처음 나오는 알파벳인 I/E는 에너지의 원천이 어디서 오는지를 나타낸다. 테스트 결과가 I로 나오는 사람은 에너지가 안에서 나오는 사람이고, E로 나오는 사람은 밖에서 생기는 사람이다. 쉽게 말해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은 E 성향일 확률이 높고, 소수의 사람 혹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사람은 I인 기질이 많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I 성향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서울살이 6년 차 동안 1인 가구로 별 탈 없이 살고 있다. 1인 가구 수가 614만 7,516가구, 1인 가구 비율이 30.2%인 '나 혼자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나 지인들 중에 혼자 사는 사람이 없어서 크게 와닿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평을 보면서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걸 다시 느끼게 됐다.  





오늘 소개할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2021)'은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 '진아'(공승연)의 이야기다. 진아는 쉽게 말해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이다. 직장동료들과 밥을 먹는 것도, 옆집에 있는 남자가 말을 거는 것도 불편하다. 걸을 때나 버스에 탈 때 귀는 이어폰에, 눈은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필요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말을 섞지 않는다.


진아의 이런 성향은 두 가지 때문으로 영화에서 소개된다. 하나는 가족 문제다. 진아가 어렸을 때 바람 펴서 집을 나간 아버지가 어머니가 돌아가실 쯤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있는 진아는 어머니의 유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왔다고 생각한다. 진아는 아버지를 믿지 못하 거실에 펫캠을 설치하고 아버지를 관찰한다. 두 번째는 진아의 직장 때문이다.  진아는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 상담원이라는 직업이 감정 소비가 심하기 때문에 진아는 점점 본인의 감정을 표현하거나 드러내는 일이 없는 것이 더 편한 상황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혼자 있는 게 편한 진아의 상황을 뒤 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파트 옆집에 살던 남자가 고독사로 죽은 것이다. 옆집에 살던 남자가 죽은 사건은 진아에게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진아의 혼자 사는 삶이 본인을 지켜주지 못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때쯤, 회사에서도 변화가 생긴다. 바로 신입 교육을 맡게 된 것이다.



진아가 교육시켜야 할 신입 수진(정다은)은 'I' 성향인 진아와 달리 'E'성향인 사람이다. 혼자서 밥은 절대 못 먹고 선배에게 친해지고 싶어 커피도 사 오고 밥도 같이 먹자고 말한다. 아버지가 선물해주신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진아에게 선물하기도 하면서 진아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진아는 이런 수진이 불편하다. 점심을 같이 먹자는 수진을 결국 밀어내고, 수진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는다. 수진은 업무 중 진상 고객을 만나게 되고, 결국 출근을 하지 않게 된다.


한편 사람이 죽은 옆집에 새로운 남자 성훈(서현우)이 등장한다. 현우 역시 E 성향의 사람이다. 이웃인 진아가 공격적으로 말을 해도,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고 본인이 살던 집에서 죽은 사람의 제사를 아파트 사람들을 불러서 진행할 만큼 사회성도 뛰어난 사람이다.


수진의 업무를 그만두는 상황은 진아가 변화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결국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해 미안함을 전하고, 성훈이 주최한 제사에도 참여하고, 아버지와의 관계에도 조금씩 다 가게 되면서 영화는 종료된다.


 


1인 가구로 산지 6년째가 돼가는 나는 '혼자 사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나 역시 영화의 진아처럼 겉으론 혼자서 잘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매일 같이 혼자 일어나서 출근하고, 퇴근하면 어두운 집에 돌아와야 하는 건, 편하기도 하지만 외로운 일이다.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는 건 좋을 수도 있지만, 대화 없이 식사하는 건 쓸쓸하게 느껴진다. 혼자 지내면 내 계획대로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안의 외로움은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코로나로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설사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생겨도 다른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저 사람은 괜찮은 사람일까라는 생각 때문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기 어려웠다.


같이 시간을 지낼 연인이 생겨도 내 시간을 가지고 싶어 했다. 매일 같이 연인을 만나면 즐거움보다는 가끔씩 에너지가 뺏기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혼자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도 많이 있었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성향 때문에 함께 만났던 사람들이 힘들어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메시지에 많은 공감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메시지는 '혼자 사는 사람들에게도 연대와 커뮤니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아가 혼자 살고 있지만 외롭고 무서워서 티브이를 켜놓고 사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에는 혼자 지내는 것보다, 같이 있고 싶어 한다. 티브이나 유튜브의 사람들을 진아가 계속 보고 있는 것은, 본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관계가 매체에 나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에서 진아가 나가야 할 연대의 방법을 잘 보여준 사람들이 등장한다. 한 명은 진아의 아버지이고, 또 한 명은 옆집 남자 성훈이다. 진아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이후 교회 커뮤니티에 가서 연대한다. 집으로 신도들을 초대하고, 어머니의 추모예배를 드리며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옆집 남자 성훈도 마찬가지다. 옆집으로 이사 온 이후 전에 살던 사람의 제사를 지내면서 같은 동 사람들과 함께 인사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자리를 만든다.


나 역시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과 연대하고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에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31명의 사람들과 직, 간접적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욱 챙기려 노력하고 있고, 코로나 상황이 풀리면 가족들도 좀 더 자주 찾아뵈려고 한다. 교회 같은 커뮤니티도 서울 내에서 찾아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천천히 거리를 두고 알아가기로 해요


진아가 하고 아버지에게 했던 대사다. 속도와 깊이, 넓이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우리는 결국 서로가 필요하고 함께 있을 때 더욱 빛난다.


콘텐츠 평가 (왓챠 피디아 평점 기준)

★★★★☆(4.5/5.0 만점)






매거진의 이전글 '남들 하는 건데, 군대가 뭐가 힘들어?'에 대한 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