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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혼잣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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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헌일 Oct 27. 2022

길고양이

잘 먹지 못한 탓에

몸뚱이 부분 부분 털이 빠져

마른 털북숭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지나가는 낯선 행인들에게

몸을 비비며 앙칼지게 울어댄다.


이렇게나 배부르게 먹고서

채워진 배 따스하게

이부자리에 몸 비비며 편히 잠을 자도

어째선지 길고양이처럼

여기저기 방황하는 기분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인간이기에

말마따 배부른 소리로밖에는 안 들리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나 자신을 길고양이에게 투영한 것 마냥

아쉬운 소리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지나는 너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동질감을 느껴서

울음이 나 눈물을 훔쳤는데

사람들은 하나같이

매서운 고양이 눈을 하고

하찮은 듯이 흘겨보는 것 같다.


한낱 위선처럼 느껴져서일까?

뭐, 그런 것도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음식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셔서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는 것 같고

마른 몸에 배만 불뚝 나온 채로

거울 앞에 서면 울긋불긋

지저분한 피부로 덮인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다반사다.


그 와중에

거울에 비친 앙상한 몰골을 보며

하나 깨닫게 된 건

거리의 길고양이들처럼

생존을 위해 번득이는 눈빛이 아닌

죽은 처럼 탁한 눈을 가진  모습이었다.


길고양이의 냉혹한 세계에선

나약한 존재는 이내 죽어버리는 것처럼.


인간이기에 누릴 수 있는

풍족한 삶을 살아왔던 내가

이렇게 죽은 눈을 가지게 된 건

살기 위해 하루하루

몸부림치는 너희들보다

모자라고 부족해서일까.


깊은 밤, 골목을 가득 메운

귀에 박히는 듯한 울음소리에

창문 밖을 내다보니 길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 집 창문을 바라보며

애처롭게 울고 있었는데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번뜩이는 가여운 눈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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