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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Nov 22. 2021

산티아고 순례길, 아스트로가~라다날, 21.5km

23. Day20. 한국인 신부님

특히 한국 사람들을 쭉 보면 직진 본능과 강박관념이 있다. 때로는 육체의 한계를 느끼고 회귀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늘은 20km만 걷는 날, 어제 약속했던 대로 아침부터 바에 들어가 '데이만'을 마저 읽었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의 부모님을 만나고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부상을 당했다. 아파할 때쯤 장교인 '데미안'을 만나 마음속의 자신을 만나고 소설은 끝나게 된다.


 아침에 책을 읽고 까미노 길을 걸으면 읽었던 책에 대한 잔상이 남게 된다. 그것을 느끼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다. 마치 싱클레어처럼 까미노 길이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오전 10시 반이 다돼서야 출발했다. 오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을 정도로 맑았다. 얼마 안 지나서 개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를 발견했다. 까미노 길 위에서는 수없이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노부부가 함께 손잡고 걷는 장면, 개와 함께 걷는 장면, 아이를 등에 업고 같이 걷는 모습, 심지어는 눈에 장애가 있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와 함께 걷는 딸도 있었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비범한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다는 것. 이것이 내가 이 길을 걸으면서 깨달을 점 중에 하나이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스스로 대단하다 생각했던 나 자신도 그저 평범한 보통의 사람이라는 겸손함을 깨닫게 해주곤 한다.



 목적지에 빨리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 없이 걷다 보니 세상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늦게 출발해 아무도 사람이 없었던 만큼 이 자연을 오롯이 품 안에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한참을 걷다가 억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많은 십자가들이 보였다. 까미노는 카톨릭의 길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 걷다 보면 수없이 많은 십자가를 만나게 된다. 돌로 만든 십자가, 나뭇가지로 만든 십자가 등등.. 그중에서는 노란색 리본으로 묶여있는 십자가도 볼 수 있었다.



  어느덧 라바날에 도착했더니 누나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다행히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었다. 이곳에서 운명처럼 한국인 신부님을 만났다. 까미노 길 위에 한국인 신부님이 계시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곳이 여기인 줄은 몰랐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께서 한국인들은 잠깐 남아서 기다리라 하셨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왜 여기 카톨릭에서는 식사 시간에 침묵 속에서 식사하냐고 여쭤봤더니, 그건 하느님의 말씀을 더 잘 듣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그런 깊은 뜻이...  모여 있는 한국인 중에는 정말 다리가 많이 안 좋아지신 아주머니도 있었다. 그런 아주머니를 보면서 신부님께서 한 말씀하셨다.



 "까미노에서 가장 먼저 깨닫는 한계는 육신의 한계입니다. 때로는 육신의 한계를 느끼고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사람들을 쭉 보면서 드는 안타까운 생각은 너무 직진 본능과 강박관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회귀할 줄도 알아야 하고 멈출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절대로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멋있는 말이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때로는 남에게 피해도 서슴없이 주는 사회 속에서, 계속에서 흔드는 빡빡한 사회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내 스스로가 정한 기준과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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