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홍 Nov 25.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라다날~몰리나세카, 26.43km

24. Day21, 죽음. 상실의 슬픔

네 영혼이 여기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여행하길...! 부모님 곁에서, 친구들 곁에서 좋은 목소리만 들으며 편히 쉬길...!


 새벽 4시 반에 나와 별을 보고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로 한 우리의 계획은 알베르게가 6시에 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저 멀리 지평선 뒤로 밤하늘과 햇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는 우리가 산을 올라갈 때쯤 떴는데 이색적이라고 느낄 만큼 아름다웠다.



 오늘은 프랑스길에서 두 번째로 산을 오르는 날이다. 그 산에는 '용서의 언덕'처럼 순례길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쿠르스 데 페로'라는 곳이 있다. 높은 철 십자가로 된 이곳은 죽음을 상징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기 품 안에 있는, 그동안 놓아주지 못했던 것을 놓아주고 온다. 대체로 죽은 사람의 사진, 죽은 아내의 결혼반지,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 9시 반쯤 되었을까? 드디어 '쿠르스 데 페로'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철십자가 크진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상당히 오래된 사진도 있었다.  


크루스 데 페로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여자 친구나 할아버지 외에 상실이라고 할 것이 없을 것 같은 27살의 어린 나도, 사실은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나랑 동갑이고 같은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였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꽤 많이 친했다. 같은 공대에 성격까지 맞았던 우리는 동아리 외에도 같이 술도 마시며 즐겁게 놀았고, 1학년이 끝나 군대를 가기 전에는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군대에서 소식이 끊겼다. 유일하게 연락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원래 지병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아파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또 끊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전역을 했고, 학교 생활에 다시 적응해 새로운 사람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바쁜 3학년을 보낸 때쯤, 갑자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그 친구의 나이는 25살이었다. 25살. 알고 보니 암에 걸려 의가사로 재대하고, 2년간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어느덧 내 눈가는 다시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흔히들 하느님께서 좋아했기에, 좋아해서 먼저 데리고 갔다는 말을 하지만, 그딴 소리는 그 당시엔 나에게 아무런 위안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까미노 길 위에서 다시 그 생각을 하니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느덧 순례길을 건 지 3년이 지나 30살이 되었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25살의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심호흡을 천천히 하고 다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설산이 보였고, 파란 하늘과 맑은 구름이 보였다. 구름 사이에 있는 파란 하늘을 보고, 내 곁을 떠난 그 친구를 위해 꼭 잘 살라고 인사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오랜만에 판매하는 매점이 아닌 기부하는 매점을 보았고, 또 각 나라까지 여기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표시되어 있는 것들을 보았다. 자주 이 순례길을 찾는 나라들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고, 당연히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리막길은 계속된 돌길이었다. 산을 많이 다닌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돌과 자갈이 많은 산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한 묘를 봤다. 1999년생이 세상을 떠나 세워져 있는 비석이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세상을 떠난 자들을 많이 접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비석 밑에는 파울루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에 언급된 유명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The boat is safer anchored at the port, but that's not the aim of boats."


  


 오후 3시가 넘어 몰리나세카에 도착했었다. 이 산을 내려오는 길은 까미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웠다. 산에 내려왔을 때 누나들은 거의 녹초가 되었다. 오랜만에 산을 넘다 보니 힘들었나 보다. 오늘 묵었던 공립 알베르게는 정말 최악이었다. 도시랑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설도 가장 별로였다. 몰리나세카에서는 웬만하면 사립 알베르게를 가길...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아스트로가~라다날, 21.5k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