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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Nov 25. 2021

산티아고 순례길, 라다날~몰리나세카, 26.43km

24. Day21, 죽음. 상실의 슬픔

네 영혼이 여기서 바람처럼 훨훨 날아다니며 자유롭게 여행하길...! 부모님 곁에서, 친구들 곁에서 좋은 목소리만 들으며 편히 쉬길...!


 새벽 4시 반에 나와 별을 보고 산 정상에서 일출을 보기로 한 우리의 계획은 알베르게가 6시에 문을 열어주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저 멀리 지평선 뒤로 밤하늘과 햇빛이 공존하고 있었다. 해는 우리가 산을 올라갈 때쯤 떴는데 이색적이라고 느낄 만큼 아름다웠다.



 오늘은 프랑스길에서 두 번째로 산을 오르는 날이다. 그 산에는 '용서의 언덕'처럼 순례길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쿠르스 데 페로'라는 곳이 있다. 높은 철 십자가로 된 이곳은 죽음을 상징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기 품 안에 있는, 그동안 놓아주지 못했던 것을 놓아주고 온다. 대체로 죽은 사람의 사진, 죽은 아내의 결혼반지,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 9시 반쯤 되었을까? 드디어 '쿠르스 데 페로'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철십자가 크진 않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상당히 오래된 사진도 있었다.  


크루스 데 페로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여자 친구나 할아버지 외에 상실이라고 할 것이 없을 것 같은 27살의 어린 나도, 사실은 친구를 잃은 상실의 아픔을 겪은 사람이었다. 그 친구는 나랑 동갑이고 같은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친구였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꽤 많이 친했다. 같은 공대에 성격까지 맞았던 우리는 동아리 외에도 같이 술도 마시며 즐겁게 놀았고, 1학년이 끝나 군대를 가기 전에는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 친구는 군대에서 소식이 끊겼다. 유일하게 연락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원래 지병을 가지고 있었고, 많이 아파서 치료받고 있다고 했다. 그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이 또 끊겼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는 전역을 했고, 학교 생활에 다시 적응해 새로운 사람들과 즐겁게 놀고 있었다.


 그런데, 바쁜 3학년을 보낸 때쯤, 갑자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때 그 친구의 나이는 25살이었다. 25살. 알고 보니 암에 걸려 의가사로 재대하고, 2년간 투병생활 끝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었다.


 내려오는 도중에 어느덧 내 눈가는 다시 눈물이 고여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었다. 흔히들 하느님께서 좋아했기에, 좋아해서 먼저 데리고 갔다는 말을 하지만, 그딴 소리는 그 당시엔 나에게 아무런 위안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 뒤로 2년이 지난 까미노 길 위에서 다시 그 생각을 하니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팠다. 나는 어느덧 순례길을 건 지 3년이 지나 30살이 되었지만, 그 친구는 아직도 25살의 시간 속에 멈춰 있었다.


 심호흡을 천천히 하고 다시 주변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설산이 보였고, 파란 하늘과 맑은 구름이 보였다. 구름 사이에 있는 파란 하늘을 보고, 내 곁을 떠난 그 친구를 위해 꼭 잘 살라고 인사를 했다.



 내려오는 길에 오랜만에 판매하는 매점이 아닌 기부하는 매점을 보았고, 또 각 나라까지 여기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표시되어 있는 것들을 보았다. 자주 이 순례길을 찾는 나라들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고, 당연히 한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리막길은 계속된 돌길이었다. 산을 많이 다닌 사람이라면 느끼겠지만 돌과 자갈이 많은 산을 걷는다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내려가는 길에 한 묘를 봤다. 1999년생이 세상을 떠나 세워져 있는 비석이었다. 오늘은 이상하게 세상을 떠난 자들을 많이 접하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비석 밑에는 파울루 코엘료의 '순례자'라는 책에 언급된 유명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The boat is safer anchored at the port, but that's not the aim of boats."


  


 오후 3시가 넘어 몰리나세카에 도착했었다. 이 산을 내려오는 길은 까미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아름다웠다. 산에 내려왔을 때 누나들은 거의 녹초가 되었다. 오랜만에 산을 넘다 보니 힘들었나 보다. 오늘 묵었던 공립 알베르게는 정말 최악이었다. 도시랑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고, 시설도 가장 별로였다. 몰리나세카에서는 웬만하면 사립 알베르게를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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