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홍 Feb 06. 2022

산티아고 순례길, 아르주아~몬테도고조, 34.6km

32. Day29, 태극기와 배낭

순례길을 처음 시작할 때, 15kg에 달했던 배낭은 어느덧 8kg 정도로 줄었다. 내 삶의 무게는 8kg이면 충분했나 보다.


 오랜만에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마지막 마을인 몬테 도 고조까지 가는 날이다. 당일날 늦게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자의 여권을 받는 줄이 길어서 오래 걸리기 때문에, 보통 전날 마지막 마을에서 하룻밤을 자고, 일찍 산티아고에 도착해 순례자의 여권을 받는다. 대부분 여기서 하루 머무르기 때문에 수용 인원도 500명이나 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숲길을 걸었는데, 어찌나 벌레가 많던지 시끄러운 주변 환경 속에서 걸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정말 더운 날씨가 되었다. 하지만 마음과 몸은 한결 가벼웠다.


 인생의 짐이라고 일컬었던 내 배낭의 무게도 어느덧 절반 가량 줄어 있었다.

배낭. 순례길에서는 배낭을 흔히 삶의 무게라고 부른다. 내 삶의 무게는 출발했을 당시 15kg이 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8kg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샴푸, 스킨, 로션을 썼기 때문에 양이 줄고, 또 필요 없는 옷 같은 것을 버렸더니 어느덧 삶의 무게가 절반 가량 줄어들었다. 출발했을 당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것저것 넣었던 내 삶의 무게가 결국 8kg으로도 살아가는 데 있어 충분했던 것이다.

 

순례길에서의 내 삶의 무게

 가방에는 늘 태극기가 꽂혀 있었는데, 사실 난 순례길에서 늘 가방에 태극기를 꽂고 다녔다.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으로서 이 거리를 자랑스럽게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다이소에서 5개에 1000원인가 주고 산 것인데, 5개 중 4개는 바람에 날려 잃어버리고 마지막 태극기는 끝까지 잃어버리지 않고 꽂고 다녔다. 태극기를 꽂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는지, 많은 분들이 신기해하셨고, 어떤 한국인 아주머니 분은 사진도 찍으셨다. 덕분에 1~2년 뒤 아주머니께서 낸 에세이 책에 내 사진이 달릴 수도 있었다.


 겨우 마지막 언덕을 넘어 오늘의 묵을 마지막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대부분이 숙박하는 마을이지만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슈퍼도 거의 동네 구멍가게 슈퍼여서 먹을 것도 없었고, 나와 10명의 일행은 가지고 있는 모든 라면을 탈탈 털어서 저녁을 먹었다.

 


 다 먹고 자기 전에 HJ누나를 비롯한 몇몇 일행들이 밤하늘이 예쁘다고 보러 나가자고 했다. 오랜만에 본 밤하늘이었다. 핸드폰으로 찍은 거라 잘 나오진 않았지만, 분명 예쁜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다들 "내일 도착하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생각과 얘기를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제 5km 남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멜리다~아르주아, 14.64km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